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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Aug 30.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V 서울 연경당

스물셋. 순조, 효명세자, 순원왕후와 연경당

박보검과 김유정 주연의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은 조선 말기의 순조와 효명세자때 가상의 인물을 추가시킨 픽션이다.

극중 효명세자의 어머니가 어려서 죽는걸로 나오는데 사실 순원왕후는 효명세자와 순조의 죽음도 보고 숨을 거둔다.

1828년 효명세자는 연경당에서 어머니 순원왕후의 40세 생일 축하 진작례를 연다.

진작례는 왕실의 경축행사 때 신하들이 임금에게 술과 음식을 올리고 예를 표하는 의식이다.

극중 순조의 정신쇠약의 원인인 난은 1811년 홍경래의 난이다.

조선 제 22대 왕 정조의  중전인 효의왕후가 아들을 못 낳고 4명의 후궁 중 원빈 홍씨 아들 못 낳고 요절하고효빈 윤씨 역시 아들 못 낳고 의빈 성씨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 출산하여 세자 책봉하지만 문효세자 5살에 병사하고 안타까운 정조는 어린 문효세자를 성저십리(한양 도성 밖 십리 안) 용산방 만리창계에 묻고 효창원(지금의 효창공원-일제시대에 문효세자와 의빈 성씨의 묘를 파헤쳐 서삼릉으로 이전하고 공원으로 격하시켰다) 조성한다.

마지막 수빈 박 씨 아들이 순조에 오른다.


조선 제 23대 왕 순조는 이제 11살로 노론 정순왕후(영조의 계비)가 56세에 수렴청정한다.

정조의 모친 66세의 혜경궁 홍씨,  48세의 정조 마누라 효의왕후,  31살의 순조 생모 수빈 박 씨 다 무릎을 꿇었다.  

천주쟁이라고 하여 순조의 삼촌 은언군, 정조의 외삼촌인 홍낙임을 모두 죽인다.

시파(사도세자를 동정하는 세력은 시파,  사도세자의 행실을 비판하는 세력은 벽파)인 정약용 유배, 정조의 친위부대 장용영이 쿠데타를 꾀한다하여 해체한다.

정조의 측근들 전멸.


수렴청정 13년만인 1803년 순조의 친정에 들어가자 정순왕후의 경주 김씨들 내쫓는다.

덕분에 경주 김씨인 추사 김정희도 제주도로 유배 가게된다.

1811년 조선시대 내내 왕따인 북쪽 지방에서 고려의 유민인 홍경래가 난을 일으킨다.

그래 대리청정기간의 효명세자는 북쪽인사에 탕평을 한다.


1827년 순조는 대신들 앞에서 건강 때문에 여러 해 동안 정사를 소홀히 하고 지체시켰으니 세자가 총명하고 영리하니 대리청정을 명한다.

대리청정을 명할 때 효명세자는 19살 순조는 38살.

효명세자는 124칸 한옥을 지어 부친을 모신다.

현판은 演慶堂연경당.

경축행사를 벌이며 효를 배푸는 집.

연경당 앞을 흐르는 개울은 다리를 건너야 연경당으로 들어간다.

현실을 떠나고 싶은 것.

이 돌다리 앞의 괴석 받침대 윗면 네 모서리에는 신선이 사는 이상적인 세계에 들어가는의미로 달나라에 산다는 두꺼비가 기어 다니는 조각을 해 놓았다.

연경당의 대문 현판은 長樂門장락문(즐거움을 오래오래 누리는 곳에 들어가는 문)

장락문을 지나 행랑마당에 들어서면 그 앞으로 두 개의 중문이 있고 사랑채가 있는 사랑마당으로 들어가는 솟을대문의 현판은 長陽門장양문(볕이 오래 드는 문.)

안채가 있는 안마당으로 들어서는 평문의 修仁門수인문(어진 품성을 닦는 문)

사랑채 동쪽 마당에는 책을 보관하고 독서를 하기 위해 善香齋선향재(책의 향기에 취하는 집) 배치하고

선향재 뒤쪽 동산 언덕에는 화초와 꽃나무를 심은 화계를 만들고 그 위에 휴식하기 위한 濃繡亭농수정(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비단을 펼친 듯한 정자)을 지었다.

장락문 앞의 괴석분
修仁門 수인문
안채로 들어가는 수인문과 문 옆의 정심수
善香齋 선향재
濃繡亭 농수정

1828년 효명세자는 연경당에서 어머니 순원왕후의 40세 생일 축하 진작례를 연다.

순조는 사대부 옷으로 갈아입고 평생 처음으로 행복한 여가를 보낸다.

같은 해 효명세자는 寄傲軒기오헌 건립한다.

이제 안동김씨 김조순의 세도정치는 시작되어 효명세자가 말만 꺼내면 외할아버지 김조순는 딴지를 건다.

그래 스트레스때문인지 효명세자는 3년 만에 생을 마감하고 순조는 다시 왕으로...

1834년 45세로 간다.

순원왕후는 아들 효명세자에 이어 지아비를 보낸다.

여기서 끝난게 아니다.

1832년 세딸 중 명온·복온공주를 보낸고 1844년 막내 덕온공주의 죽음도 보게된다.


연경당은 마치 젊은 미망인처럼 담담하고 외롭다

-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최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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