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chitect Y Sep 12.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VI 충청 홍주성

열아홉. 어이없이 바뀐 행정구역, 비운의 홍주성

홍주는 충청도의 4목(충주, 청주, 공주, 홍주)가운데 하나였다.

홍주는 1890년만 해도 평택에서 남으로는 서천까지 6군 16현을 관할하던 대도시였다.

일제는 공주와 홍주 발음 헷갈린다고 1914년 결성군과 통합하면서 홍성군이 된것이다.

충청도의 4목 가운데 ‘홍주’만이 유일하게 일제에 의해 본래의 ‘홍주’라는 이름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2012년은 홍주라는 지명역사가 1000년을 맞는 해였다.

1451년 새로 수축한 홍주성.

사적 제231호.

홍주성은 최장 1,772m에 달하였으나 810m만 현존하며 성내 관아의 건물이 35동에 이르렀으나 조양문, 홍주아문, 안회당(동헌), 여하정만이 남아있다.

朝陽門조양문은 1870년 한응필이 중건.

시경의 鳳鳴朝陽봉명조양(봉황이 산의 동쪽에서 운다는 뜻으로 천하가 태평할 조짐,어진 인재가 때를 만나 일어난다)에서 가져 왔다.

이 동문의 현판은 대원군이 하사하지만 멸실된다.

동문은 조양문, 서문은 景義門경의문, 望華門북문은 망화문, 남문은 문루가 없으면서 虹霓門홍예문으로 하였다.

서문, 북문은 일제침략기에 그들에 의해 훼철되고

1914년 객사와 향청은 홍성초등학교로, 동헌은 면사무소로, 작청은 우편국, 관노청은 경찰서장관사로 전용한다.

朝陽門조양문 정면
朝陽門조양문 측면

1678년 건립된 동헌.

22칸 규모의 목조건물로 홍주군의 政事堂정사당으로 건립하였다.

홍주목사와 홍주군수가 행정을 집행하는 사무실로 사용되었으며 1870년년에 동헌을 개축하고 흥선대원군으로부터 安懷堂안회당이라는 扁額편액을 하사받았다

안회당은 論語논어 公冶長공야장편에 나오는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노인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벗들을 미덥게 하며, 어린 젊은이들을 따듯하게 감싸주고자 한다)에서 따온 말로

모두를 위해 정사를 펼치겠다는 의미이다.

현판은 광복 이후 분실되어 1991년에 안회당을 부분 중수하면서 현판과 堂記당기를 새로 조각하였다.

생존하는 4개의 동헌(태인동헌, 무장동헌, 천안동헌) 중 하나다.

安懷堂안회당


안회당 뒤뜰에 있는 余何亭여하정.

3평 5합5작 규모의 목조건물로 못 위에 떠 있는 水上亭수상정이다.

정면에는 金炳秀김병수가 쓴  판이 걸려 있다.

정각의 평면 형태는 6각형이고, 6각 기둥에는 詩額시액 懸板12현판이 붙어 있다.

시액 01 余方宥公事여방유공사; 바햐흐로 공사를 시작하여

시액 02 作小樓二間작소루이간; 조그만 누각2간을 지었도다

시액 03 懷伊水中央회이수중앙; 연못의 물은 중앙으로 맴돌고

시액 04 樹環焉泉縣수환언천현; 들러리 나뭇가지는 샘가에 걸려 있도다.

시액 05 開方塘半畝개방당반무; 반이랑 정도 수문을 열어놓으니

시액 06 九日湖之湄구일호지미; 햇빛에 비친 연못의 물살이 아름답구나.

시액 07 一人斗以南일인두이남; 남쪽은 한 사람의 도량으로 가하거니와

시액 08 捨北官何求사북관하구; 북쪽을 다스릴 관리를 어떻게 구하리오.

시액 09 環除也皆山환제야개산; 물이 옥환으로 도는 곳 모두가 다 산인데

시액 10 於北豈無隹어북기무추; 이 북쪽에 어찌 새가 살지 않으랴?

시액 11 賓主東南美빈주동남미; 손님과 주인이 동남을 좋아하니

시액 12 其必宥所樂기필유소락; 반드시 즐겨하는 바 거기에 있도다.


1978년 10월 7일 강도 5˚의 지진이 발생하여 성곽의 일부가 붕괴된 것을 계기로 성곽주변 가옥 64동 철거와 토지를 매입하여 주변정비 및 성곽 보수중이다.

2001년부터 2020년 까지 4,300억 투입되는 대 복원공사 계속된다고 한다.

홍주성안 3만 3천 평은 문화재 보호구역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건축가의 주유천하 V 전라 해남 해촌서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