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chitect Y Sep 28. 2016

육지것의 제주인문이야기 III 제주의 비경 용연

예순셋. 제주의 야경 첫번째, 龍淵용연

제주도기념물 제57호 용연계곡과 용연교.


용연계곡은 바다가 만들어낸 기암괴석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이르는 영주 12경의 하나로 꼽아왔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발원한 한천이 바다로 흐러드는 이 냇골은 예로부터 용연 또는 龍潭용담, 龍湫용추라고 불렀다.

가까운 곳에 용의 모습을 한 용두암이 있는데다 깊이를 가늠키 어려운 이곳의 물속에 용이 살고 있다 여긴 옛 사람들이 이를 신성시해 생겨난 이름이다.

용연은 병풍을 두른 듯한 양쪽 벼랑 위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무성하고 절벽의 돌이끼와 이끼가 고운 꽃잎과 기이한 풀, 아래로는 파도소리가 운치를 더한다. 이처럼 산과 물의 경치가 하나로 어우려져 지금까지도 옛 제주성 주변 경관으로 최고로 꼽는다.

출렁거리는 현수교를 건넌 뒤 아담한 정자에 올라 계곡의 기암절벽과 시원하게 트인 바다 경관을 즐기고 있으며, 주변에 사는 시민들은 야간 및 새벽산책코스로 이용하고 있다.

耽羅志탐라지(李元鎭이원진)에 따르면 용연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고씨 심방이 55자(17m)의 용을 만들어 용연의 물에 꼬리를, 뭍에 머리를 올려놓고 이레동안 굿을 하자 화창했던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고 전해진다.

또한 바다와 기암절벽이 한껏 멋을 풍기는 용담동 용연계곡은 예부터 제주의 선비들이 뱃놀이를 하던 곳이다.

선비들은 용연계곡의 광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여름밤에 용담동 한천 하류에 배를 띄우고 뱃놀이를 벌이면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이를 增補耽羅誌증보탐라지(윤시동이 탐라지를 보완해서 씀)에서는 龍淵夜帆용연야범이라고 했는데, 7∼10m 높이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진 漢川한천 하류와 속칭 한두기 포구 사이에서 열리던 옛 선비들의 밤 뱃놀이 풍광을 일컫는 말이다.


제주를 다스리던 牧事목사들은 너나없이 용연에 배를 띄우고 풍류를 즐겼다.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인 李衡祥이형상이 부임해 제주도내 고을을 순시할 때의 장면을 그린 조선시대 화첩 耽羅巡歷圖탐라순력도(국가지정 보물 제652-6호)에도 어김없이 용연의 경관이 등장한다.

①병문천屛門川 : 지금의 제주시 오등동 남쪽, 한라산의 1500m 고지에서 발원해 벌랑포를 지나 바다로 나간다.

②벌랑포伐郞浦 : 병문내 하류에 있는 갯가의 이름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곳을 부러릿개라고 한다.

③대천大川 : 漢川한천이라고도 한다. 제주도에서 가장 긴 하천이다. 한라산 정상에서 발원해 취병담을 지나 바다로 간다.

④취병담翠屛潭 : 대천 하류지역에 있는 물웅덩이로 屛潭병담, 龍湫용추, 龍淵용연이라고 하는데 이형상은 南宦博物남환박물에서 취병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일명 龍湫용추라고도 한다. 이곳은 주의 서쪽 성 바깥 2리에 있다. 이곳 한천 하류 양쪽은 벼랑이 깎아지른 석벽이다. 그 높이는 수십 장이다. 그 아래는 맑은 못이다. 길이는 수 백 칸이다. 너비는 일백 척이다. 물 깊이는 수 장이다. ‘먹돌’이 많다. 두충, 감류가 양쪽 벼랑에 둘러싸여 자란다. 뱃놀이하기가 좋다.

⑤대독포大瀆浦 : 대천 하류에 있는 갯가의 이름이다. 이 일대를 ‘한대기’라고 한다. 대독포의 ‘대독’은 ‘한대기’의 한자를 차용한 표기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냇깍’이라고 한다. 사리 썰물에는 걸어서 지날 정도로 물이 줄어든다.

⑥대천외리大川外里 : 그 당시 제주목에서 볼 때 대천 바깥에 있는 마을이라는 말이다. 대천을 경계로 동쪽에 있는 마을을 ‘동한두기’, 서쪽에 있는 마을을 ‘서한두기’라고 한다. 대천외리는 서한두기가 된다. 지금의 용담1동에 속한다.

⑦용두龍頭 : 둘이다. 동쪽의 용두를 엉코지라고 한다. 엉물이라는 식용의 용출수 바로 동쪽에 있는 코지라는 말이다. 서쪽의 용두를 용머리코지라고 한다. 엉코지와 용머리코지 사이 후미진 곳을 엉개낭이라고 한다. 병담범주 그림 속에서 장막을 친 곳이다. 엉개낭 앞에는 패선여가 있다. 잠녀들의 어장이면서, 어부들이 자리돔을 잡는 어장이다.


협곡의 바위에는 옛사람들이 새긴 탄성 어린 글귀들이 있다.

신선이 노닐었다 해서 仙遊潭선유담, 협곡의 바위가 비취빛 병풍과 같다고 해서 翠屛潭취병담등이다.

용연에 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530년의 新增東國輿地勝覽신증동국여지승람(이행, 윤은보, 신공제, 홍언필, 이사균 등이 동국여지승람을 증수, 편찬한 책)의 기록이다.

가뭄이 들면 마르고, 비가 내려 물이 흘러 웅덩이에 이르면 넘쳐흘러 그 깊이를 알지 못하며,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도한다고 했다.

1577년 林悌임제는 南溟小乘남명소승에서 용연의 물이 맑고 푸르며, 그 안은 아늑해서 어부들이 배를 감추어 바람을 피하는 곳으로 취병담이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1602년의 金尙憲김상헌의 南槎錄남사록에서도 거의 동일하다.

1653년 이원진은 탐라지에서 용연의 수심은 밑이 없다고 했고 1681년 李增이증은 南槎日錄남사일록을 통해 끝이 없을 만큼 깊다고 서술하고 있다.

1696년 제주목사였던 李益泰이익태의 知瀛錄지영록에서는 취병담을 설명하면서 포구와 바다 사이는 하나의 띠를 이룬 사장으로 조수가 통하기도 하고 막히기도 한다고 했다.

이 곳에 원래 있던 구름다리는 1987년 철거되었고 이후, 제주시는 2004년 조명과 함께 현수교를 길이 42m, 너비 2.2m 규모로 재현하였다.

용연교에서 용연포구 일대 420m 구간의 야간 조명과 함께 제주시 야간관광 중심이 되었다가 관리계약 만료로 그 빛을 잏었지만 2011년 조명을 LED로 교체하며 활성화된 야간관광명소로 자리잡는듯 했다.

바로이어 2012년 태풍피해로 조명이 상당부분 유실되었고 2013년 용연교와 보도주변의 조명은 보수했지만 계곡 안쪽조명 보수는 요원해 졌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야간행사를 개최하며 산지천~용연~용두암~해안도로로 이어지는 제주시내 야간관광의 중심이라는데에는 이견이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계곡조명의 완전한 복구를 바래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지것의 제주인문이야기 III 제주의 비경 큰엉해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