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지 못해 멋대로 행동하는...
시원스레 깊은가을의 새벽 공기를 들이 마신다.
이 시간의 바람은 혼란을 이야기하지 않는듯 답답함을 씻어내린다.
SNS를 통해 들려오는 어린 친구들의 미담들이 이시간 이리도 청명한 바람같다.
차분히 흐르는 강물처럼 위에서 내려와야하는 배움은 고인 상류의 썩은 물을 역류하듯 잡아당긴다.
배움이라는 말을 착각하는 시간을 3세대를 지나다보니 지혜는 버려져 버린지 오래다.
가르쳐야 할 사람들은 망각하고 무엇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를 잊었다.
1606년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사신을 보내 通信통신의 和好)를 요청하면서 임진왜란은 자기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조선 정부는 僉知첨지 全繼信전계신에게 답서를 쓰게 해 일본이 선왕의 二陵이릉을 파헤친 만행을 따졌다.
이에야스는 범인이라며 왜인 둘을 잡아 사신과 함께 보냈다.
임금은 즉각 둘의 목을 베어 저자에 매달았다.
하지만 그들은 고작 스무 살 남짓의 젊은 자로, 임진년 당시 너무 어려 결코 범인일 수가 없었다.
시늉이나 하겠다는 수작이었다.
李廷龜이정구는 왜인들의 거짓 범인 인계를 믿을 수 없으니 이 일로 종묘에 고해 하례할 수 없다고 따졌다.
이듬해 봄 조선은 呂祐吉여우길 등을 통신사로 보냈다.
李德馨이덕형이 전별 시에서 읊었다.
신하 되어 능침 치욕 여태 씻지 못했는데,
편지가 제 먼저 오랑캐 땅 들어가네
臣子未湔陵寢辱 신자미전능침욕
看書先入犬羊天 간서선입견양천
尹安性윤안성도 함께 글을 올린다.
회답사란 이름 달고 어딜 향해 가는가.
오늘 와서 교린이라 나는 알지 못하겠네.
한강의 강가에서 시험 삼아 바라보라.
이릉의 송백에는 여태 가지 안 난다네
使名回答向何之 사명회답향하지
今日交隣我未知 금일교린아미지
試到漢江江上望 시도한강강상망
二陵松栢不生枝 이릉송백부생지
치욕이 여태 생생한데, 교린이 무엇이고 회답이 웬 말이냐는 것이었다.
안 되겠다 싶으면 납작 엎드렸다가, 틈만 나면 궤변으로 도발했던 일본 열도의 것을 근현대의 소위 리더들이 시간이 수백년이 흘러 되풀이한다.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로서 文體反正문체반정(기존 고문古文들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여 일으킨 사건) 때 노론계 북학자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정조의 칭찬을 받았던 成大中성대중은 이야기 했다.
귀하다고 교만해지고 젊다고 방자해지며,
늙었다고 나약해지고 가난하다고 초라해지는 자는
모두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貴而驕 壯而肆 귀이교 장이사
老而衰 窮而悴 노이쇠 궁이췌
皆不學之人也 개불학지인야
- 靑城雜記 卷之四 醒言 청송잡기 4권 성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