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놓쳐버리 삶.
때에 대한 생각...
최근에는 어느장소이건 정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어쩌다 저렇게 끝을 알수 없는 無低坑무저갱으로 치 달을 수 있을까...
카이로스 (고대 그리스어: Καιρός, 라틴 문자전사: Kairos, 라틴어형: Caerus)는 기회의 신이다.
앞머리는 풍성하며, 뒷머리는 대머리. 그리고 등에는 날개가 있으며, 양팔에는 칼과 저울을 들고있다고 알려져 있는 모습은 호기는 빨리 포착하지 않으면 나중에 파악할 수 없다는 의미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적절한 순간, 기회, 올바른 척도...
우리에게는 항상 주어진 시간속에 기회를 가지고 살아간다.
어떠한 이유인지 그 기회를 얻는이가 있고 또 잃는 이가 있다.
신라 元述郞원술랑의 고사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660년, 羅唐聯合軍나당연합군의 신라군은 육로로, 당나라 군대는 해로로 백제를 협공하였다.
협공으로 7월10일, 수도 사비성이 함락됨으로써 백제는 결국 멸망했다.
당나라는 백제에는 夫餘隆부여륭을 도독으로 熊津都督府웅진도독부(660년)를,
고구려에는 薛仁貴설인귀를 도독으로 安東都督府안동도독부(668년)를 두어 백제와 고구려를 완전히 점령하려고 획책했다.
여기에 더하여 文武王문무왕을 3년 여름 4월에 당나라가 우리나라를 雞林大都督府계림대도독부로 삼고, 왕을 雞林州계림주 大都督대도독으로 삼았다.
그래서 신라는 동맹국이었던 당나라와 싸워야하는 상황이었다.
한편 고구려 백성들도 국권을 회복하고자 여기저기서 저항 운동을 벌였다.
고구려 水臨城수임성(현재의 경기도 파주시 군내) 사람인 大兄대형(고구려 14관등 중 제7위) 劍牟岑검모잠이 남은 백성들을 모아 窮牟城궁모성에서 浿江패강(대동강) 남쪽으로 진격해 당나라 관리와 승려 法安법안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였다
고구려 백성의 환심을 사야 장차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계산했던 신라는 전략적 요충지인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지방인 金馬渚금마저 땅을 제공했다.
문무왕은 14년(674년)에 조카딸을 안승에게 시집보냄으로 고구려 유민과 신라는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문무왕은 백제 땅에서 당나라를 쳐 加林城가림성을 탈환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백제의 옛 도성인 사비성마저 빼앗고 군량미를 운반하는 당나라의 배 70척을 침몰시켰다.
그러자 당나라 고종도 4만의 군사를 보내 신라를 치게 했다.
당나라 대군은 두 패로 나누어 安市城안시성과 馬邑城마읍성 근처에 진을 쳤다.
신라에서는 선봉장으로 曉天효천 대장군을 비롯하여 의문, 산세, 능신, 元述원술(이순신의 둘째) 등의 장수들을 보냈다.
신라군은 석문(石門) 평야에서 효천 장군을 비롯, 의문과 산세, 능신등 모든 장수가 전사하고 함께 죽고자했던 원술은 보좌하던 담능의 만류로 살아돌아오자, 김유신은 문무왕에게 아들 원술을 석문 싸움에서 패한 죄를 물어 사형에 처할 것을 건의했다.
문무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김유신은 끝내 아들을 집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673년 7월, 김유신이 79세를 일기로 죽음을 맞이하자 원술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갔으나 어머니 智炤지소부인은 선친에게 아들 노릇을 하지 못했으니 내가 어찌 그 어미가 될 수 있느냐고 냉정하게 말하고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원술은 한 맺힌 가슴을 쥐어 뜯으며 태백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슬프도다. 내 어찌하여 그때 죽지 못했던고.
나를 말린 담릉이 이다지도 원망스러울 수가 없구나.
김유신의 장례가 끝난 지 60일이 지났을 무렵 당나라는 신라 북쪽 영토를 침략해 들어왔다.
산에 묻혀 지내는 원술의 귀에 이 소식이 알려졌다.
원술은 임금을 찾아가 수치를 벗게 해 달라고 간청했고 이를 선뜻 받아 주었다.
매초성 싸움터로 나간 원술은 한을 풀려는 듯 성난 호랑이처럼, 굶주린 사자처럼 날뛰며 닥치는대로 적을 무찌르고 대승을 거두었다.
문무왕은 원술에게 다시 벼슬을 내렸으나 원술은 굳이 마다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에 와 보니 어머니는 중이 되어 어느 절로 떠나 버렸다는 것이었다.
원술은 꿈에 그리던 어머니의 얼굴조차 다시 뵙지 못하고, 흐느껴 울며 태백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몇 해 뒤에 아무도 모르게 쓸쓸히 죽고 말았다.
失期恥命 실기치명
때를 놓치면 살아 있는 것이 수치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