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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Dec 12. 2016

일반인문 LXXXII 毛遂自薦 모수자천

이재명 성남시장이 꺼낸 ‘우산론’에 대한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답을 보며

12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꺼낸 ‘우산론’에 대해 “대의도 명분도 없는 합종연횡은 구태정치”라고 밝혔다. 


우선, 合從連衡합종연횡이란 중국 전국시대의 최강국인 秦진과 燕연, 齊제, 楚초, 韓한, 魏위, 趙조의 6국 사이의 외교 전술을 이야기한다.

鬼谷子귀곡자를 스승으로 둔 두 사제, 蘇秦소진과 張儀장의에 의해 시작된 외교술.

책략으로 볼 때 합종은 약한 다수가 강한 하나를 공격하는 것으로 강국의 겸병을 막자는 데 목적이 있었다. 반면에 연횡은 강국이 약국을 도와 그 나라로 하여금 겸병을 진행시키는 책략이다. 

합종의  縱종은 남북을 뜻하고, 연횡의 橫횡의 뜻으로 동서를 말한다. 


여러 나라를 유세하고 있던 蘇秦소진은 우선 연에게, 이어서 다른 5국에게 '진 밑에서 쇠꼬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자'고 설득하여, 6국을 縱的종적으로 연합시켜 서쪽의 강대한 진나라와 대결할 공수동맹을 맺도록 하였다. 

이것이 합종(合從:從은 縱)이다. 

뒤에 위나라 張儀장의는 합종은 일시적 허식에 지나지 않으며 진을 섬겨야 한다고, 6국을 돌며 연합할 것을 설득하여 진이 6국과 개별로 횡적 동맹을 맺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을 연횡(連衡:衡은 橫)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은 합종을 타파한 뒤 6국을 차례로 멸망시켜 중국을 통일하였다.

이재명 성남시장.

毛遂自薦 모수자천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가 스스로를 추천하는 경우를 이야기 한다.

전국시대말엽 趙조 惠文王혜문왕의 동생인 평원군 趙勝조승은 어진 성품에 손님을 좋아하여 그의 집에 모여든 식객의 수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당시 서쪽의 강한 秦진이 조나라를 침략하여 수도인 한단까지 포위당하게 되자, 조나라는 평원군을 楚초에 보내 合從連橫합종연횡으로 연합을 하고자 하였다. 

평원군은 함께 초나라로 떠날 용기 있고 文武문무를 겸비한 인물 20명을 뽑고자 했다.


평원군은 식객들 중에서 수행원을 뽑기 시작했지만 19명은 뽑았으나 한 사람을 뽑지 못해 20명을 채우지 못했다. 

이때 毛遂모수라는 식객이 나서면서 자신을 추천하면서 평원군에게 말했다.

“제가 듣기에는 공게서는 장차 초나라와 합종을 하고자 20명의 식객을 선발하고자 하였으나 한 사람이 부족하시죠. 원하건데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이에 평원군은 모수에게 물었다. 

“선생은 내 문하에 있은 지 몇 년이나 되었소?”

모수가 대답했다. 

“3년이 되었습니다.” 

평원군이 말했다.

“무릇 현명한 자가 세상에 있는 것은 마치 송곳이 주머니 안에 있는 것과 같아서 금방 그 송곳 끝이 주머니 바깔으로 비어져 나오게 마련이오. 그런데 선생은 내 집에서 3년 동안이나 기거하셨지만 주변에서 선생을 칭찬하는 말을 나는 한 번도 듣지 못했소. 이것은 선생이 재능이 없다는 증거요. 그러니 초나라에 갈 수 없소.”

(여기서 나온 성어가 囊中之錐낭중지추)

모수가 대답했다.

“그러니 이제라도 저를 주머니 속에 넣어주시기를 청하는 것뿐입니다. 만약 일찍 저를 주머니 속에 넣어주셨다면 단지 송곳 끝만 보였겠습니까? 송곳의 자루까지 모두 내보여드렸을 것입니다.”

이에 평원군은 모수와 함께 초나라로 가기로 했다. 

19명의 식객들은 모수가 수행원으로 끼어들자 은근히 멸시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초나라로 가면서 19명은 점차 모수를 인정하게 되었다. 

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왕을 알현하고 합종에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였다. 

그러나 한 나절이 되도록 초왕을 설득하였으나 아무것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었다. 

이에 19명의 식객들이 모수에게 堂上당상으로 올라 가기를 원 했다. 

이에 모수가 초왕과 평원군이 앉아 있는 곳으로 뛰어 올라가 한편으로는 칼자루를 잡고 초왕을 협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뛰어난 언변으로 초왕을 설득하여 합종을 이루고 귀국하였다. 

평원군은 귀국 후 왕이 칭찬하면서 사람 보는 안목을 이야기하자 이렇게 말했다.

“내 다시는 선비의 관상을 보지 않겠다. 모 선생조차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모 선생의 무기는 단지 세 치의 혀였지만 그 힘은 정말 백 만의 군사보다도 더 강한 것이구나”라고 하며 모수를 上客상객으로 모셨다고 한다. 

毛遂모수가 될만한 자질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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