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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Feb 08. 2017

일반인문 LXXXIV 국정교과서

; 최순실게이트로 뒤로 밀린, 미래를 결정하는 화두. 역사의 일반화

이준식 교육부 장관이 국정교과서 배포를 하더니 검인정 교과서도 대한민국 건국절 기재해도 된다고 말한다.

친일파들이 친미파가 되고(https://brunch.co.kr/@architect-shlee/118) 이들이 거짓말 교과서를 만들어서 미국적인 것을 모두가 좋고 과거의 전통을 모두가 나쁘다고 가르쳐왔다.

일반화의 오류를 역사학에서는 쉬이접할수 있지만 멈춰지지는 않는다.


역사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사적 사실들이 어떤 배경하에서,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연구이지, 역사에 대한 가치판단은 아니다.   

- What Is History E.H.Carr, 역사란 무엇인가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와 비가 사라예보에서 두 명의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된다. 

이 암살사건은 남 슬라브민족의 통일을 부르짖고, 황태자를 그 장애물로 본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적 비밀결사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 사건에 세르비아 정부가 관련되었다고 하여 즉각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보내고, 7월 28일에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역사가들이 진실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속에 나타난 일반적인 것이다. 

1920년대 역사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1914년의 전쟁의 원인에 관한 논의는 여론의 견제를 받지 않고 비밀리에 활동한 외교관들의 실책 대문이라거나 아니면 세계가 불행하게도 지역적인 주권국가로 분할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전제하에 보통 진행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 전쟁이 몰락기 자본주의의 세계 분할의 충동에 쫓긴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적대관계 때문에 일어났다는 원인, 적어도 20세기라는 조건하에서의 전쟁의 원인에 대한 일반화를 내포하고 있었다. 

60년대 이전부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논쟁이기는 하지만 Max Horkheimer 호르크하이머, Theodor Wiesengrund Adorno 아도르노, Herbert Marcuse 마르쿠제, Jurgen Habermas하버마스 등은 「계몽의 변증법(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 등의 저서를 통해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도구적 이성 탓이라고 한다. 

역사에서의 일반화는 이 보다 더 멀리 나간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기독교조차 이러한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역사가란 자신의 증거를 검증하기 일반화를 이용한다. 

역사를 읽는 사람 역시 역사를 쓰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일반화의 상습자들이다. 

그들은 역사가들의 관찰을 자기에게 가까운 다른 역사적 상황 - 아마도 자기 자신의 시대에 - 에 적용해 본다. 

따라서 일반화와 역사가가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는 타당치 못하다. 

역사는 일반화 위에서만 생장할 수 있다. 

1st Baron Acton of Aldenham 존 댈버그 액턴이「케임브리지 근대사 총서」의 한 책에서 솜씨 있게 말하고 있듯이 역사가를 역사적 사실의 수집가와 구별해 주는 것은 일반화이다. 


일반화의 문제는 역사의 교훈이라는 나의 두번째 문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일반화라는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려는 데 있다. 

- What Is History E.H.Carr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대통령과 여당이 온 나라 사람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분열시키면서 반대론자와 비판론자들에게 사상과 이념 공세를 퍼붓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력을 이용해 강제적이고 위협적으로 동의를 '조작'하는 일일 뿐이다.

존 듀이는 학교를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이라고 했다.

https://brunch.co.kr/@architect-shlee/204 

국정 교과서가 지배하는 학교교육은 민주주의 교육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정 교과서가 지배하는 학교는 학교가 아니다.


*참고로 아버지가 4.19 학생대표였던 역사를 기려 집 전화번호 뒷자리를 0419, 아버지 휴대폰 번호 뒷자리를 4190으로 정했다고 말하며 한반도 역사는 물론 자신의 개인사까지 국가주의 민족주의 코드로 치환시키는데 거리낌이 없는 기승전 국뽕의 마력으로 한국 문화계의 주요 아이콘으로 떠오른 설민석이 한국사 붐을 일으킨 건 인정하나 획일화되고 지나친 단순화, 배타적 시각의 위험 또한 알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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