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 惡業악업을 진심으로 懺悔참회 반성하고
새벽, 거실에서 커피향에 취해 창을 연다.
갑작스럽게 떨어진 수은주는 이틀째 그 자리를 지킨다.
깊숙히 들이 마시는 숨사이로 스쳐가는 생각들에 잠시 빠진다.
누구에게나 힘들고 아픈일은 경중을 떠나 경험하게된다.
나 또한 1년을 힘에 겨워 눈물을 흘린 시간이 있다.
누구에게도 말을 뗄수 없어 혼자 흘렸던 눈물과 그 속에 담긴 진한 참회는 새로운 시작을 하게 했다.
사람 사는 사회에 잘못이 있을 수 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매번 성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오를 얼마나 빨리, 치열하게 반성하고 개선하느냐에 미래 성패가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의 청산을 부르짓는 이유도 그것이다.
지나간 허물을 고치고 바른 길로 들어서야 한다는 기본적인 일조차 망설이다보니 더이상의 나아감이란 있을 수 없는것이다.
반성을 종교적인 용어로는 懺悔참회, 悔改회개로 쓰기도 한다.
자신이 범한 죄나 과오를 깨닫고 뉘우치는 일을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부르짓는 뉘우침은 현대의 종교는 가지지 못한다.
그게 퇴보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닐까.
중국 춘추시대 때 진나라 晉 靈公영공은 어질지 않아 백성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여 담장에까지도 조각을 하는 등 사치하였으며, 또 높은 누대 위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탄환을 쏘아 백성들이 피하는 것을 구경하며 즐기기도 하였다.
어느 날 요리사가 곰 발바닥을 을 삶았는데 잘 익지 않았다고 그를 죽여 삼태기에 담아 요리사의 아내에게 그것을 머리에 이고 조정을 지나가게 하였다.
그때 대신인 趙盾조돈과 士季사계가 삼태기의 사람 손을 보고 그 까닭을 물어 알고서는 걱정하면서 영공에게 장차 간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사계가 말했다.
그대가 군주에게 간하다가 들어 주지 않으면 뒤를 이어 간할 사람이 없을 것이니, 내가 먼저 간 하겠소.
만약 주군이 들어 주지 않는다면 그대가 내 뒤를 이어서 간하시오.
사계가 군주를 세 번이나 대궐 처마 밑에 있는 물받이까지 쫓아간 이후에야 진영공은 그를 보면서 말한다
나도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이제 고치겠소.
사계는 머리를 조아리고 이어간다
사람으로 누구나 잘못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한 것을 능히 고칠 수 있다면(過而能改) 그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시경에 말하기를 ‘모두 시작은 있지만 끝까지 잘하기는 드물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잘못을 잘 고치는 자가 적다는 것입니다.
군주께서 능히 끝까지 잘할 수 있다면 사직은 견고해질 것이니, 어찌 여러 신하들만이 그 은덕을 입겠습니까?
人誰無過 過而能改 善莫大焉 인수무과 과이능개 선막대언
詩曰 靡不有初 鮮克有終 시왈 미불유초 선극유종
夫如是 則能補過者鮮矣 부여시 칙능보과자선의
君能有終 則社稷之固也 군능유종 즉사측지고야
豈惟群臣賴之 기유군신뢰지
- 宣公二年 春秋左氏傳 선공2년 춘추좌씨전
반성과 참회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모를 때 사람들의 비난은 더욱 거세진다.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더 이상 개선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가정, 학교, 사회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의 가치를 잘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거리낌 없이 방종에 가깝게 행동하는것이 좋은것인것 처럼 부추기기까지 한다.
배움과 살아감에 대해 중용은 이야기한다.
배우기를 좋아함은 앎에 가까워지고,
힘써 행하면 어짐에 가까워지며,
부끄러움을 알면 용기에 가까워진다
好學近乎知 力行近乎仁 知恥近乎勇
호학근호지 역행근호인 지치근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