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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Feb 24. 2017

건축가의 주유천하 I 강원 창절사

열여섯. 節槪절개를 역사에 새긴 남효온이 배향된 彰節祠창절사

박팽년은 단종이 폐위되자 경회루 못에 빠져죽으려 하였다.

그러자 성삼문이 후일을 도모하자며 말린 일을 기록하였다.

성삼문은 단종이 세조에게 선위(禪位)하자 옥새를 안고 통곡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하였다.

세조는 왕위에 오른 뒤에 하위지를 예조참판으로 삼았다. 하위지는 녹을 먹기를 부끄러워하여 한 방에 쌓아두었다 한다.

무인이었던 유응부는 단종복위계획이 발각된 뒤에 세조가 무사를 시켜 그의 살가죽을 벗겼으나 굴하지 않았다.

그는 성삼문 등을 돌아보며, 사람들이 書生서생과는 일을 꾀할 수 없다더니 과연 그러하구나라며 탄식하였다고 한다.

또한, 불에 달군 쇠로 단근질을 하여도 낯빛을 변하지 않으며, 이 쇠는 식었으니 다시 달궈오라며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六臣傳육신전(사육신의 전기)에 수록된 내용이다.

육신전은 朴彭年박팽년, 成三問성삼문, 李塏이개, 河緯地하위지, 柳誠源유성원, 兪應孚유응부순으로 한 사람씩 전을 기록한 뒤에 마지막에 贊찬을 붙인것으로 20대에 낙향한 南孝溫남효온이 사육신의 절개를 그리며 남긴것이다.

당연히 사육신을 기리는 글을 쓴 죄로 전남 장흥으로 유배당한다.

단종의 생모는 顯德王后현덕왕후로 1437년 20살에 세자빈이 되고 결혼식도 못한 채 1441년 단종 낳고 바로 죽는다.

경기도 안산의 昭陵소릉에 모시고 덕이 넘쳐나는 왕비라는 의미의 顯德현덕이라는 시호가 내려진다.

소릉은 항상 홍수로 물에 잠기는 위치다.

현덕왕후의 어머니와 동생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사형당하고, 아버지가 추폐되어 서민이 되고 이어 종묘에서 신주가 철거되며 평민의 예로 개장되자 이에 남효온이 追復추복을 건의하였다.

南孝溫남효온

본관 宜寧의령, 원래 당에서 넘어온 성씨.호 秋江추강(가을의 강)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다.

39살에 숨을 거두자 죽음을 슬퍼하며 김시습이 조사를 쓴다.


俗態詐慝 속태사특

勿喜矜譽 물희긍예

勿嗔毁辱 물진훼욕

怡然順理 이연순리

悠然有得 유연유득


세태의 흐름은 사특한 것으로

칭찬에 기뻐하지 말며

욕을 하더라도 성내지 말지니

기꺼이 순리를 따르노라면

조용히 얻는 것이 있으리라


1504년 갑자사화 때 소릉 복위를 상소했다는 이유로 부관참시당한다.

추강의 시신은 480년 동안 고양시 대장동 일대에 묻혀있었으나 1987년 신도시 개발로 김포시 하성면 의령 남씨 문중 묘지로 옮겨졌다.

1782년 정조가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창절사에 배향.

주소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063-1.

강원유형문화재 제27호.


창절사는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세조에 의하여 피살되거나, 절개를 지키던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원래 장릉경내에 六臣祠육신사가 있었는데, 1685년에 감사 홍만종이 도내의 힘을 모아 개수하여 3칸의 사우에 사육신과 호장이었던 엄흥도와 박심문 등을 모셨으므로 팔현사가 되었다.

이후 왕릉 곁에 신하들의 사당을 둘 수 있느냐가 논란이 되면서 1705년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고 육신사에서 彰節祠창절사로 고쳐 賜額사액을 내렸다.

1791년 창절사에 단을 세우고 생육신 중 김시습·남효온을 추가로 모시고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서원에는 2층 누문인 拜鵑樓배견루가 정문으로 되어 있고, 그 안에 彰節書院창절서원이라 扁額편액된 강당이 있으며, 그 뒷쪽으로 내삼문을 거쳐 들어가면 창절사와 동·서무가 있다.


배견루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지붕 옆면이 八자로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강원도에 있는 사당이나 서원 중 대문이 문루인 곳은 이곳 뿐이다.

내삼문에는 예전의 六臣祠육신사 현판이 걸려 있고, 창절사 현판은 1709년 尹師國윤사국이 쓴 것이다.


창절사는 1788년의 대대적인 보수를 비롯하여 그뒤 여러 차례 중수와 보수를 거치며 현재 남아있는 강원도 내의 사당이나 서원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지어졌을 당시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이다.


*六臣傳육신전의 주요 내용


박팽년은 종일토록 의관을 풀지 않은 박팽년의 지사적 성격이 으뜸이다.

성삼문은 달군 쇠창에 다리가 뚫리고 팔이 잘리는 형벌 속에도 '안색불변'하는 의연한 지조를 본 받아야 한다.

이개는 곤장을 맞으면서도 안색도 안 변하는 지사이다.

유성원은 사건이 나자 부인과 술을 나누어 영결하고 사당에 올라 자살을 했다.

하위지는 세종 이후 최고의 인재이다.

유응부는 달군 쇠를 가져다 배 아래에 놓아 기름과 불이 함께 일어났는데도 안색 불변으로 끝내 불복하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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