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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Mar 06. 2017

건축가의 주유천하 II 경기 여유당

열넷. 남양주 餘裕堂 여유당

남양주시 鳥安조안(새소리가 편안한 동네)면 陵內능내(韓確확한의 묘가 있다 하여)리.

丁載遠정재원은 슬하에 若鉉약현, 若銓약전, 若鍾약종, 若鏞약용 네 아들을 둔다.

아버지 정재원과 어머니 해남 윤 씨 사이에 넷째아들로 1762년 태어난

丁若鏞 정약용.

호는 茶山다산, 與猶堂여유당, 俟菴사암, 菜山채산, 본관 羅州나주


당시 朝廷조정은 老論辟派노론벽파(사도세자의 행실을 비판하는)가 득세하던 시절.

나주 정씨 가문은 대대로 南人남인(유성룡을 필두로한 영남출신)으로 시파를 따른다.

1776년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조선 제22대 왕에 오르자 사도세자를 동정하는 時派시파 득세하고 남인도 입성한다.

1783년 소과 합격하고 성균관에서 수학 중 정조와 조우한 후 1789년 대과에 3등으로 합격한 후 중심으로 진출한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하자 벽파의 반격이 시작된다.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천주교도 100명 사형당하고 400명 유배가는 과정에서 셋째 정약종은 사형, 둘째형 정약전은 신지도로 유배가고 정약용도 포항으로 귀양길에 오른다.

9개월 후 청나라의 주교에게 조선의 탄압상을 알리려는 黃嗣永帛書事件 황사영백서사건(황사영은 정약종의 사위)이 터진다.

형 정약전은 추자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정약용은 살던 움막에 현판을 걸었다.

四宜齋사의재

생각을 맑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맑아지지 않으면 더욱 맑게 하고,

용모를 단정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단정해지지 않으면 더욱 단정히 하고,

말을 반드시 필요한 것만 말하되, 말을 뱉은 다음 그것이 꼭 필요치 않은 것이었다 싶어지면 더욱 잔말을 줄이고,

행동을 무겁게 하되 제대로 무거워지지 않으면 더욱 무겁게 하여 애쓴다.

1808년 강진읍에서 20리 떨어진 산속으로 들어간다.

산 이름은 찻잎이 많은 산이라

茶山다산.

牧民心書목민심서를 비롯한 500권의 책 저술한다.

1816년 형 정약전 유배지 추자도에서 숨을 거둔다.

강진에서의 유배 생활이 길어지자 정약용의 장남 학연은 유배에서 풀려날 수 있도록 형조판서(지금의 법무부 장관)에게 잘 봐줄 것을 부탁한다.

1819년 18년 만에 유배가 풀린다.

조안면 고향집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57세.

사랑채에 새로운 현판을 걸었다.

餘裕堂여유당

與猶여유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뼈 속까지 시린 겨울 냇물을 건너듯이, 너의 이웃을 두려워하거라’라는 뜻.

1836년 숨을거두고 여유당 뒷동산에 안장한다.

묘지자리는 子坐之原자좌지원

1925년 한강이 넘쳐 여유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1986년 남양주시는 이곳 다산 생가터 7,000평을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여유당 복원한다.

옛 景安驛경안역을 지나 호젓한 옆길로 꺾어들어가면 차분히 가라앉은 조용한 마을에 마당이 드넓은 정약용의 생가가 있다.

전통 한옥에 뚜렷한 ㅁ자 20칸 집이고, 오른쪽에 사당, 왼쪽에 생전의 유품을 수집·정리한 유물전시관이 있다.

생가 왼쪽으로 與猶堂여유당이라 새긴 비머리돌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생가를 정면 발치에 둔 묘가 소박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곡장에 쌓인 봉분 앞엔 상석과 향대가 있고 오른쪽엔 비석이 있으며, 양 옆 멀찍이에 혼유석이 나앉았다.

묘 앞에서 나뭇가지 사이를 헤치고 정면으로 건너다보면 팔당호의 은빛 물결이 출렁인다.

다산 생가 옆에 있는 다산기념관에는 정약용의 저서와 서한, 산수도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다산문화관에서는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다산학 무료 강좌를 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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