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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Apr 07. 2017

건축가의 주유천하 IV 서울 제중원

스물여섯. 최초의 근대식 병원 濟衆院제중원

조선에는 국립의료기관이 惠民署혜민서(조선시대 의약과 일반 서민의 치료를 맡아본 관청)와 活人署활인서(조선시대 도성내의 병인을 구료하는 업무를 관장)가 있었다.

1876년 조선이 개항되고 이를 대신할 의료기관이 필요했다.

이 시기에 기독교 각 교파는 선교사를 파견한다.

1884년 미국 북장로회를 필두로 이듬해엔 미국 북감리회가, 1889년 호주장로회, 1890년 영국성공회, 1892년 미국 남장로회, 1896년 미국 남감리회, 1898년 캐나다장로회가 각각 한국에 선교사를 입국시킨다.

선교활동은 救恤구휼과 의료봉사가 필수다.


1884년 감리교 Robert S. MaClay 로버트 맥클레이 선교사가 선발대로 들어오며 서양식 병원 설립을 제안했을 때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이 해엔 12월 甲申政變갑신정변(김옥균을 비롯한 급진개화파가 개화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 발발한다.

같은해 미공사관 부속 의사로 들어와 있던 미국 북장로회 의료선교사 Horace. N. Allen 알렌이 이때 중상을 입은 閔泳翊민영익을 서양의술로 살려냄으로 서양식 병원설립이 가속화한다.

알렌은 정부의 지원으로 재동 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에 1885년 2월 29일(음력),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인 광혜원 설립하게된다.


廣惠院 광혜원(Widespread Relief House; 널리 은혜를 베푸는 집)


광혜원원장 품계는 堂郞당랑(정3품 上階상계인 문관으로 각 司사의 실무 책임을 맡은 正郞정랑과 佐郞좌랑).

광혜원이라는 명칭은 2주일 만에 백지화되고, 그 해 3월 12일에 새로 濟衆院제중원(House of Universal Helpfulness 대중을 널리 구하는 집)이라는 이름을 붙여 개원했다.

당시 백성들의 병은 1위가 소화기 환자, 2위가 성병이었다.

환자의 수가 늘어나서 진료업무가 복잡하게 되자 1885년 Heron,J.H 존 헤론 선교사 입국해 합류한다.

당시 남자에게 여자가 진료 받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라 1886년 여의사 Elless, A. J. 엘러스가 파견되어 제중원에 婦人部부인부를 신설하고 왕실 여인들의 진료에 종사하였다.

알렌은 1886년 제중원에 의학교 설립한다.

전국에서 소질이 있는 16명 입학하여 3개월 교육 중 4명 탈락하고 14명이 의사 교육을 받았다.

반역죄로 사형당한 홍영식의 집이 몰수된 상태라 1887년 정부의 지원으로 병원을 지금의 을지로 입구 홍영식의 집으로 옮겼다.

고종은 제중원의 의료 활동을 높이 평가하여 알렌과 엘리스에게 당상관(지금의 국장급) 품계의 벼슬을 내렸다.


1887년 가을 알렌이 대사 수행원으로 미국으로 떠나자 존 헤론 혼자 악전고투하다 1890년 이질로 죽는다.

도성 30리 안에는 묘를 쓸 수 없지만 정동 미 공사관에 존 헤론 안치한다.

그래 연일 상소가 빗발친다.

영국공사는 조선은 통상 지역 내에 외국인 묘지를 무상으로 제공해야 된다는 조영수호통상조약서를 들이대자, 1890년 12월 나루터 양화진은 외국인묘지가 되고 존 헤론 묘 이장한다.


헤론이 죽은 후 제중원은 Vinton, C. C.빈튼이 운영했으나 정부와 사이가 안 좋다.

나라가 망해가는 관계로 운영비도 없어 고종은 제중원 운영권을 미 북장로회로 이양한다.

1894년 Avison, O. R 에비슨이 운영을 이어받고 1895년 재입국한 알렌은 이제 미공사가되어 미국 친구에게 운산금광채굴권 팔아먹고, 1896년 경인철도운영권도 팔아 넘기고 서울의 전기, 전차, 상수도 운영권도 팔아치운다.

1899년 에비슨은 뉴욕에서 열린 만국선교대회에 참석해 가난한 조선 땅에 현대식 병원의 건립을 호소하자 석유재벌 세브란스는 건립비 전액 45,000달러 기부하여 1904년 서울역 앞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 건립하게되고 제중원은 세브란스병원으로 개명한다.

1905년 알렌은 조선에 더 이상 팔아 치룰것이 없자 귀국한다.

1987년 연세대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캠퍼스 내에 광혜원 복원한다.

광혜원이 복원된 이 일대는 옛날 수경원이 있던 자리로 綏慶園수경원은 영조의 후궁인 영빈이씨의 원묘로 1969년 수경원이 서오릉으로 이전하고 봉분이 있던 자리에 1974년 루스채플(헨리루스의 이름을 기려서 Luse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 건립한다.

수경원은 사적 제198호.

수경원의 부속건물인 정자각과 비각은 그대로 남았고 현재 정자각은 연세기록보존소, 광혜원은 연세사료관으로 사용 중이다.

연세대와 서울대 간에 역사 논쟁이 벌어졌다.

대한의원의 전신인 내부병원이 설립된 건 1899년.

광혜원보다 4년 늦었고 처음엔 우리 한의사들이 양의사들과 공동 진료했다.

1900년 광제원으로 개명했고 1907년 이토 히로부미의 지시로 당시 형편으로는 엄청난 40만원을 투입해 새로운 대한의원 건립한 후 한의사들 다 내 쫓았다.

서울대병원은 광제원이 국립의료기관이었으니 자기네가 맥을 잇고 있다는 입장이고

연세대병원은 광혜원의 의술과 인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니까 적자라는 거다.

이 대한의원을 계승한 건 서울대병원이고 초대 원장은 을사오적 이지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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