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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Apr 28. 2017

일반인문 LXXXVIII 당신은 어떤집에 살고 싶나요?

; 집에 대한 생각, Art가 아닌 Humanities의 모습으로

House.

House는 hus라는 굴, 숨는 곳이라는것에서 왔다.

맹수로부터의 위험을 피해 안거할 수 있는 공간이 곧 House였다.


대한민국 사람의 반은 아파트에 산다.

주변에 전철역이 있는지 학교는 있는지, 부동산 추세는 어떤지, 어차피 '살 집'을 찾은 게 아니다.

팔아 치우고 차익 남기고 '이사갈 집'을 찾는것이 현실이다.

집(House)이 집(Home)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재화로 남아 있는 지금의 모습은 결국 수 많은 사회문제의 중심에 그 집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집을 짓는다는건 누구에게든 삶의 roman이다.

건축가로 스무해를 넘게 살아오며 나 또한 이제야 내 집을 디자인 하고 있다.

살아가는 동안 맞춤옷을 입는 것처럼 나의 몸과 가장 불편함이 없는 집을 짓고살고 싶은 마음.

그만큼 획일화된 Module안에서 산다는것에 대한 식상함이나 지어가는 과정을 떠 올리며 신비감을 느껴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원하는바의 집을 갖을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평생 한번 지어볼까 말까한데 이쁘고 멋있게 지어야지라는 생각의 시작이 이미 반은 버려진다고 봐야한다.

집은 Art가 아니다.


전 세계 건축계를 평정한 건축의 거장 Le Corbusier 르 코르뷔지(1887~1965)에는 Villa Savoye 빌라 사보아를 1931년 완성해서 찬사를 한몸에 받으며 현대건축의 혁명을 일으키지만, 건강에 쥐약인 석양빛은 방 깊숙이 들어오고 비가 안 새는 데가 없어 집주인에게 외면당했다.

Villa Savoye
Le Corbusier

뉴욕의 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미국현대건축 대부 Frank Lloyd Wright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는 1939년 미국 Pennsylvania 펜실베이니아주 Bear Run 베어런에 Kaufmann House 카프만 주택 (Falling water 낙수장)을 지었다.

집 안에 폭포를 끌어들인 이 건축은 落水莊낙수장 Falling water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도 불린다.

하루 종일, 1년 내내 온 집안에서 콸콸콸콸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니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집주인은 새로운 살집을 찾아보게 되었다.

Kaufmann House(Falling water)
Frank Lloyd Wright

70년대 인터내셔널건축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가치를 인정받은 또 다른 유명 건축가 Philip Johnson 필립 존슨(1906~2005)은 1959년 미국 Connecticut 코네티컷 주의 푸른 잔디밭 위에 철과 유리로 Glass house 라는 것을 만들었다.

온 사방이 유리고 지붕은 철판이라 뜨거워서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에어컨을 틀어도 소용없었고, 한겨울이 되니 추워서 살 수가 없었다.

Glass house
Philip Johnson

우리 시대의 스타 건축가 Frank O. Gehry 프랭크 게리(1929~)는 2004년 MIT에 Ray and Maria Stata Center 스타터센터를 완공했다.

입체를 독창적으로 해체한 감동적인 건축물이지만 게리의 이름을 떼고 보면 온통 삐뚤삐뚤한 것이 곧 쓰러질 것 같은 모양새다.

스타타 센터를 연구실과 강의실 용도로 쓰고 있는 MIT는 건축가를 고소했다.

삐뚤삐뚤한 건물 마감 사이로는 비가 새고, 건물이 지어진 직후에는 여기저기 금이 잔뜩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Ray and Maria Stata Center
Frank O. Gehry

1960년대 중반 LG의 창업자이시고 회장이셨던 故고 具仁會구인회 회장님은 자신이 노년을 살아갈 집을 짓기 위해 대한민국의 넘버원 설계사무소인 김수근사무소(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장동건 사무실로 현재는 아라리오 갤러리)를 찾았다.

담당자에게 40평이면 두 노인에겐 충분하다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 사무소의 소장들은 300평이나되는 집을 지어 결국 회장내외의 소박한 꿈은 무시되고, 건축주의 자본을 가지고 건축가가 원하는 대로 엄청난 걸 짓는 꼴이 되었다.

결국 그분은 그 집에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A그룹 회장댁, B그룹 회장댁, 당시 외국계 B기업 ceo주택, 모대학학장댁을 한꺼번에 디자인을 한일이 있다.

A그룹 회장님은 기본적인 생각을 정리해서 주시고 거기에 맞는 Second House를 디자이너가 알아서 해 주기를 바랬고, B그룹 회장님은 당시 팔순이 넘은 연세에도 직접 물어가시며 필요한 지원을 해 주셨지만 건축가에게 모든것을 일임해 주시며 마지막 인생을 보낼 곳의 디자인을 바라신것에 반해 B기업 ceo님은 따님이 미술을 하시는 분이라 무언가를 계속바꾸기를 바라는 의뢰였다.

결과는 A그룹 회장댁디자인과 기능이 가장 우수 했고 B기업 ceo주택이 이들 중 가장 못했다.

여기서도 Art의 결과가 만들어진것이다.


Architectural Designer


동남아에 정착하게된 한 젊은 건축학도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그는 한옥이 최고라는 스스로의 오만함을 담고 있었고 여행중 동남아의 그 나라 주거에 관심을 가지고 생태를 반영한 자연과 동화된 그 건축의 매력에 빠져 그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Architectural Designer라는 말이 있다.

당연히 건축가는 Architect고.

잘못듣는다면 건축쟁이중 디자인을 전담하는 사람이 아니냐고 생각할수도 있다.

의미는 Architect건축가가 되기 위해 수련하는 초보 건축가라는 의미다.

그는 생각지 못했다.

어린 Architectural Designer에게는 한옥의 모습이 그저 껍데기만 보였을 터.


1974년에 James Stirling은 「근대건축의 99%는 따분하고 진부하고 메마르고 옛 도시에 조화되지 못한다」고 했고 Peter Blake는 자신이 건축가이자 평론가이면서 앞에 말한 그 동료들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가 Form Follows Fiasco-Why Modern Architecture Hasn’t Worked이라는 책 한권을 모두 바쳐 탄식한 대로 「근대건축은 실패」라고 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대부분의 현대 건축가들은 그때의 의구심에 대해 함구하고 어떤 대안도 제시한 적이 없다.


집을 짓다.


이건 세계 어느나라에도 없는 우리의 표현방식이다.

아직까지 그 어원에 대한 설이 분분하지만 우리말 집의 어원은 동사 「짓다」와 뿌리를 같이한다. 

옷을 짓다(衣), 밥을 짓다(食), 집을 짓다(住)에서 보듯이 집을 짓는 일의 중요성을 입는 일, 먹는 일과 동격으로 설명하기 위해 「짓다」라는 동사를 함께 쓴다.

짓는다는것은 인생의 삶을 설계하고 삶의 한부분인 주변을 단순히 만들어지고 주어지고 얻어지는것이 아니고 새롭게 설계하는의미다.

지아비, 지어미라고 할 때 붙어 다니는 그 「지」 역시 「짓」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아비는 집의 아버지이며 지어미는 집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집의 어원을 생각하면 집의 근원적인 의미가 보인다.

농사를 짓고, 밥을 짓고, 옷을 짓고, 글을 짓고… 모든 것을 짓는 창조의 근원이 집이다.

의식주 말고 사람 사는 데 중요한 글쓰기도 짓는것이니 아마도 우리말 동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말은 「짓다」가 아닐까. 

그래 선조들은 짓는것으로 建築건축이라는 말보다 營造영조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했다.

영조는 만들어 경영한다는 의미다.

이는 현대건축에서 Art와 바로 연결시키는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裨補비보


요즘은 풍수 인테리어 어쩌고 하는 트렌드가 있듯이 풍수에 관심들이 많다.

하지만 풍수는 명당을 찾는 안목이지만 세상엔 완벽한 명당은 없다. 

예를들어 정도전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때 풍수가 좋아서라기보다 각지방에서 올라오는 공물의 운반과 군수물자의 이동이 중요했기에 지금의 서울이 한양이라는 500년간의 도읍이 된것이지 풍수 자체로 더욱 훌륭한곳은 대전 계룡산아래로 이곳도 물망에 올랐던 곳이다.


사람의 팔자가 노력에 따라 고쳐질 수 있듯 땅이 가진 팔자도 고쳐질 수 있다고 믿는것이 비보라는 개념이다.

중국의 넓은 땅덩어리에서 시작된 풍수는 전 국토의 70%가 산지인 우리와는 그 근본부터 맞지 않는다.

그래 보완하는 비보라는 개념을 사용해 집을 지어왔다.


끝으로 빈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 건축가는 많다. 

빛에 대해 열광한 건축가들도 있다. 

그러나 바람에 대해, 물소리에 대해 생각한 건축가는 많지 않다. 

더구나 땅의 기운과 하늘의 기운이 맞닿는 사이공간에 건축이 있고 그 빈 공간이란 정말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건축의 공간이 사람의 체질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 본 건축가는 없었다. 

우리의 건축은 인문학자-철학자들에 의해 계획되고 장인들이 만들었다. 

그들은 내공을 쌓으며 인생을 관조하였고 그러므로 우리것들은 그 장인들의 솜씨에 감동하기 이전에 그 인문ㆍ철학적 배려에 의해 사유하게 하는것이다. 

그들은 동시에 시인이며 문장가이고 (문인)화가이며 철학자로서 음악과 춤을 알았다. 

그들은 서양의 예술가들과 달리 격정을 다스릴 줄 알았던것이다. 

우리 건축은 인문학이고 그들의 작품들은 그래서 그 모든 감수성을 통틀어 다듬어진 총체적 체험을 통해서만 감지는 것이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잊는것이다.

껍데기로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오랜시간을 흘러 자손에게 물려주던 숭고한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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