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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Feb 13.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V 전라 식영정

둘. 담양의 삼승一洞之三勝과 溪山風流 계산풍류 02 息影亭식영정

푸른 시내 위 차가운 소나무아래에 이름 있는 좋은 터를 얻어 작은 정자를 지었는데, 모퉁이마다 기둥을 세우고 가운데는 텅 비었으며 흰 띠로 덮고 대나무자리로 둘렀으며 바라보면 그림으로 장식한 배 위에 새가 날개를 펴고 앉아있는 모양이다.

그대 장자의 말을 들었는가.

옛날에 그림자를 무서워한 사람이 있었다. 낮에 달려가는데 그림자가 따라오는 것 을 보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역시 쉬지 않고 따라오다가 나무 그늘에 이르 러서야 문득 보이지 않았다. 본래 그림자는 사람을 따라다니므로 사람이 엎드리면 그림자도 엎드리고, 사람이 쳐다보면 그림자도 쳐다보며. 가면 가고 쉬면 쉬는 것이 오직 물체를 따르므로 그늘에서나 밤에는 없어지고 불빛에서나 낮에는 생기게 되니 사람의 처세도 이와 같은 것이다. 옛 말대로 꿈과 그림자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조물주와 더불어 대지위에 놀며 그림자마저 없도록 하여 사람이 바라보고 손으로 가리킬 수도 없게 함이니 이름을 식영이라 함은 또 한 마땅치 않은가

- 식영정기 , 석천

 

임억령(1496-1568).

해남 생. 호 석천(石川 냇가의 돌).

1525년 정시과거 급제하고 동생 임백령도 연이어 정시과거 급제한다.

1545년 형은 금산군수, 동생은 호조판서에 이른다.


을사사화.


중종부인 단경왕후 소생 없이 폐위되고 윤임의 누이동생 장경왕후가 제1계비로 들어가 1515년 인종을 낳고 바로 숨을 거둔다.

윤원로, 윤원형 형제의 누이인 문정왕후가 1534년 명종을 낳는다.

1544년 인종 제12대 왕 등극하여 권력은 윤임이 쥐고 윤원로, 윤원형 파직 당한다.

인종 8개월 만에 타계.

윤임, 윤원형. 같은 파평 윤씨간에 싸움이 시작된다.

집안싸움이라 윤임을 편들면 대윤, 윤원형을 편들면 소윤이다.

당연히 명종의 외삼촌인 소윤이 이기고 대윤은 전부 파직당한다. 윤임, 윤임 아들 3명도 사형당한다.

임백령은 소윤이라 을사사화의 1등 衛社功臣 위사공신(:사직을 지키는데 큰 공을 세운 신하)에 오른다.

 

형 임억령은 현실이 싫어 고향으로 내려가 후학들을 가르친다.

김성원(1525-1597)이 제자로 들어 왔다.

호는 서하棲霞(:놀며 산다).

광산 김씨는 265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대한민국 성씨 중 서열 5위의 명문가다.

서하는 스승의 딸과 결혼하고 1552년 석천은 다시 동부승지로 재등용된다.

1557년 담양부사를 끝으로 낙향하고 서하는 1558년 사마시 합격한다.

1560년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장인 석천을 위해 정자를 하나 짓는다.

면앙정 송순은 스승 석천의 3년 선배다.

면앙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후배는 식영정을 1칸 줄여 짓는다.

면앙정에 대한 예우다. 정면 2칸, 측면 2칸. 단 4칸의 검박儉朴(:단순하고 소박하다)한 정자.

한쪽 귀퉁이에 방을 두고, 앞면과 옆면에 마루를 깔았다.

息影亭식영정.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

 

식영정 아래에 자신의 호를 딴 서하당도 건립한다.

 

김윤제(1501-1572)도 나주목사를 끝으로 일찍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식영정 건너편에 환벽당環碧堂 건립한다.

김윤제는 松江송강을 외손녀와 결혼도 시키고 애제자로 삼고 27세에 관계에 진출할 때까지 뒷바라지 한다.

송강의 11년 선배인 서하도 김윤제의 제자다.

석천 임억명, 서하 김성원, 송강 정철(1536-1593), 제봉 고경명(1533-1592)은 수시로 식영정에 모여 시를 쓴다.

우린 이 4명의 대선비들을 일러 식영정 사선(四仙 4명의 신선)이라 부른다.

 

송강은 식영정에 앉아 星山別曲 성산별곡(:중국의 가곡을 정곡이라 한 데 대해 우리의 가요를 이르던 말)을 노래한다.

 

성산별곡

 

어떤 지나가는 나그네가 성산에 머물며

서하당, 식영정의 주인아 내 말을 들어 보소

인간 세상에 좋은 일 많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갈수록 낫게 여겨

적막 산중에 들어가 안 나오는가 

 

1592년 왜놈들이 쳐들어와 동복현감 김성원은 성모산성으로 피신하나 몸으로 어머니를 보호하다 함께 살해당하고 같은 해 고경명도 왜놈들과 싸우다 전사한다. 

다음해 정철도 숨을 거둔다.

1972년 식영정 옆에 松江集 송강집의 목판을 보존하기 위해 장서각을 건립한다.

식영정 아래에 연못 조성하고 芙蓉堂 부용당(연)을 건립하고 입구에 <성산별곡> 시비도 세우고 이어 사라진 서하당도 복원하여 이제 명승지가 된다.

1976년 식영정 아래에 높이 25m 길이 505m의 광주호 조성하면서 송강이 서하와 함께 노닐던 紫薇灘자미탄(:백일홍을 닮은 개울), 釣臺 조대(:낚시바위), 瑞石臺서석대 등 전부 물 속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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