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chitect Y Aug 18. 2017

육지것의 제주이야기 III 제주의 비경 무수천계곡

일흔아홉. 말라가는 아쉬움, 무수천계곡

무수천부터 시작해 월대를 지나 알작지까지 이르는 아래로의 이야기를 앞서 다뤘다.

아무래도 내도 알작지에 촛점을 맞춘 글이다보니 서귀포의 강정천 만큼이나 속살이 엄청난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무수천에 관해서는 모자란점이 있고 최근에 강정천처럼 물이 간간히 흐르던 천에서 난개발에 의해 완전히 건천으로 바뀌는 모습이 아쉬워 무수천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 본다.


트래킹코스로 난이도가 상급인 無愁川무수천


無首 머리가 없기도 하고

無水 물이 없고

無數 지류가 수없이 많은

無愁 계곡에 들어서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는 무수천.


한라산의 정상 서쪽 장구목 서북벽 계곡에서 발원하여 외도동 앞바다로 흘러드는 동안 제주시와 애월읍을 남북으로 나누는 경계가 되는 약 25km 길이의 하천이다.

무수천은 제주시내 한복판을 관통하는 한천과 더불어 제주북부지역 가장 깊은 계곡이기도 하다.

잘 다듬어진 제주의 올레길처럼 쉽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만큼 위험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그러다보니 광령마을과 제주시에서는 이곳을 널리 알리고 명소화 하기 위하여 몇 해 전에 탐방로를 조성하고 기존의 광령8경을 소개하면서 발길을 유도했지만 길고 위험한 코스탓에 제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아는 사람들 몇몇만 조용히 찾는 곳으로 굳어져있다.

깊고 위험하다는 이유 말고도 주변 지리나 사정을 모르는 일반인들이 직접 찾아 나서기에는 한계가 있다보니 오히려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 할 수 있는 곳이다.


문헌에 의하면 무수천이라는 이름이 처음 보인건 1653년 8월에 제주목사 李元鎭이원진과 이원진의 소개로 반계 유형원의 문하에서 성균관 전적에 이른 제주 출신 전적 高弘進고홍진이 편찬, 간행한 제주의 역사 지리서인 耽羅誌탐라지다.


무수천은 주 서남 18리에 있으며 조공천의 상류이다.

냇가의 양쪽 석벽이 기괴하고 험하여 경치 좋은 곳이 많다.


상류에 폭포가 있어 수십 척을 飛流비류하고 물이 땅속으로 숨어 흘러서 7,8리에 이르면 다시 암석 사이로 湧出용출하여 드디어 큰 내를 이루었다.

내 밑에 깊은 못이 있는데 거기 물체가 있어 그 모양이 달구( 拘)와 같으며 潛伏變化잠복변화하여 사람에게 보물로 보이고 못 가운데 놓여 있다.


빼어난 무수천과 관련하여 과거 이원진 목사는 탐라지에서 다음과 같은 無愁川佳讚詩무수천가찬시란 시 한 수를 남겼다.


남악에 높이 올라 대폿술 마시고

냇길 따라 내려오니 흥이 절로 새로워라

들국화는 만발하여 예와 같으니

한동이 술이 두 중양절(9월9일)을 이루네.


登高南嶽擧深觴 등고남악거심상

川上歸來興更長 천상귀래흥경장

滿眼黃花如昨日 만안황화여작일

一樽仍作兩重陽 일준잉작양중양


이곳을 탐방하려면 입구 찾기부터 시작된다.

무수천 깊은 곳에는 광령8경, 또는 무수천 8경이라는 걸출한 비경들이 존재한다.

제1경인 보광천(오해소)을 시작으로, 100~200m 간격을 띄고 고지대로 올라가면서, 제2경 응지석, 제3경 용안굴(용눈이굴), 제4경 영구연(들렁귀소), 제5경 청와옥(청제집), 제6경 우선문(창꼼돌래), 제7경 장소도(진수도), 제8경 천조암 등이 이어진다.

육중한 철교인 무수천 제2교에서 광령교까지 1km정도의 거리에 8경중 1~4경이 있고 그위로 1km 남짓한 거리에서 5~6경을 만날 수 있다.

실제로 진입하는 곳도 까다롭지만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곳이다.

더군다나 무수천은 많은 비가 내려 하천이 범람하면 엄청난 양의 물이 불어나는 곳으로 해마다 피해가 발생할 정도로 우천 시 가장 위험한 곳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곳곳에는 위험지역임을 알리는 안내판도 볼 수 있다.

물론 기 조성해 놓은 탐방로에서 8경은 볼 수 없고 계곡 아래에서 찾을 수 있다.

안내판에서 보여지는 8경도 위치는 맞지만 사진이 맞지 않다.

무수천2교 아래

사라마을에서 400여 미터를 거슬러 올라가면 계곡 좌우로 병풍처럼 석벽이 둘러서 있는데 그 너머에 있는 곳이 바로 보광천이다.

전에는 숲이 무성해 午時오시(오전 11시~오후 1시)에 잠깐 햇빛이 든다고 하여 오해소라 불렸다고 전한다.

육중한 다리위로 차량의 소음이 심하지만 시원스런 첫 모습에 넋을 잃게된다.

보광천(오해소)

이어 상류로 200~250m 정도 이동하다보면 매가 자주 날아와 앉았다고 해서 맷돌(매 앉은 돌)이라고도 부르는 기암 응지석에 도착한다.

하천 서쪽으로 높이가 10m 넘는 커다란 바위가 버티고 있는 형상인 이곳부터는 물이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데 상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수영을 해야했다고 한다.

응지석

기암괴석을 뒤로하고 상류로 이동하다보면 출발지에서 500m정도 윗쪽에 석벽으로 자연동굴을 이룬 형상의 제3경 龍眼窟용안굴(용눈이굴)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곳은 제주의 산악인들이 암벽등반을 즐기는 대표적인 장소다.

동굴이 아닌 바위벽의 움푹 들어간 곳이 진짜 눈동자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그 모양을 용의 눈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 굴의 깊이는 10m도 되지 않는데 울창한 난대림과 어우러져 더욱 깊은 느낌을 준다.

龍眼窟용안굴(용눈이굴)
龍眼窟용안굴(용눈이굴) 뒷편

계곡을 거슬러 올라 무수천 다리로 유명한 광령교에 이르르면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깊은 수심의 소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이 무수천 8경중 제4경에 속하는 瀛邱淵영구연(들렁귀소)이다.

이 소에는 예로부터 사람을 제물로 바치게 해서 받아먹는다는 의미의 서먹는다는 전설이 있는데 최근까지도 여러 명이 몸을 던진 곳이다.

물이 매우 깊어 쇠앗배 12丈장(약40m)을 감추고 3년 가뭄에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지는 곳이지만 지금은 움푹 파이기만 했을 뿐 가뭄에는 바닥을 드러낸다.

비가 내려 하천의 물이 넘칠 땐 폭포가 장관을 이루는데 이를 瀛邱飛瀑영구비폭이라 한다.

瀛邱淵영구연(들렁귀소)

제1경에서부터 제4경까지는 계곡이 워낙 깊어서 계곡을 따라 이동하지 못하고, 내리고 오르고, 또 내리고 오르고를 반복해야 하지만 제5경부터는 계곡의 거친 암벽지대를 따라 이동할 수 있다.

물론 계곡이 거칠어 조심해야한다.

靑瓦屋청와옥
깨지기 전 靑瓦屋청와옥

무수천 8경중 제5경에 속하는 청와옥.

안타깝게도 큰 암벽이 쪼개진 모습으로만 보여지는데 원래 靑瓦屋청와옥은 글자 그대로 개구리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을 태풍차바가 쪼개놨다고 한다.


계속해서 오르면 제6경에 이르는데 기이한 형태의 바위가 눈앞을 가로 막는 遇仙門우선문(창꼼돌래)은 양쪽의 암벽이 서로 맞닿아 이뤄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계곡 동쪽으로 금방이라도 신선이 구름을 타고 내려 올 것만 같은 20m의 기암괴석이 대문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노송과 버들참빗 군락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으며, 제주시 오등동 한천변의 訪仙門방선문과 대조를 이룬다고 전한다.

遇仙門우선문(창꼼돌래)
長沼道장소도

이제 끝이 보이는 트래킹을 이어가다보면 마주하게되는 長沼道장소도라고하는 제7경에 이르는데 전후좌우가 모두 돌로 이루어진 물홈 모양의 70m 가량 되는 소다.

이제 마지막 찾기가 어려운 문제의 8경, 泉照岩천조암(쇠미쪼암).

별명처럼 방언으로 소를 밑지게 한다는 곳으로 워낙 낭떠러지라 주변에서 방목하던 소들이 여러 마리 떨어져 죽었다고 전하는 곳이다.

제7경에서 200m쯤 상류에 위치하며 솟는 샘은 대단하여 식수로도 이용하였다한다.

2km의 길지 않은 트래킹 코스지만 그 천혜의 모습을 허리를 가르는 교각사이로 깊히 간직한 무수천팔경은 그 영주십경에 빗댄 표현으로 그 만큼 빼어난 풍광을 지닌 곳이라 할 수 있다.

입구 찾기도 어렵고 올라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찾아다녀야하는 번거로움으로 찾는이가 많지 않아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그곳은 제주전체를 통해 비밀의 정원같은 몇 안되는 장소다.


지금도 난개발의 후유증에 말라가는 무수천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유지되기를 바래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지것의 제주이야기 III 제주의 비경 항파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