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르는 세월 속에서...자식 사랑과 효
새벽공기에 깊어지는 가을을 느낀다.
그리 빠르게 또한 시간이 가고...
어느새 지난주는 시간이 흘러 추석을 앞두고 지난 윤오월에 莎草사초한 묘소에 다녀왔다.
항상 부모님 앞에 서면 가슴 한켠이 저려온다.
흐르는 시간속에 잠시 마음을 놓아본다.
아, 사람으로서 닭들과 같아서야 되겠는가?
만약 닭과 같다면, 그런 사람을 사람이라고 해야 하겠는가?
아니면 닭이라고 해야 하겠는가?
그런 사람을 일러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니 ‘사람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噫 可以人而同於雞乎 희 가이인이동어계호
然則以是謂人耶雞耶 謂之人不可 연즉이시위계야 위지인불가
則雖謂之人雞 亦可也 즉수위지인계 역가야
- 斗庵集 人雞說 두암집 인계설
조선 정조, 순조 때 좌부승지 등을 역임하였으며, 일생의 대부분을 학문 연구에 몰두하면서 보냈던 斗庵두암 金若鍊김약련이 닭이 자신의 어미 닭이 먹을 먹이를 빼앗아 자신의 새끼 닭에게 먹이는 것을 보고 느낀 심정을 기록한 글이다.
대부분 자식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사랑을 쏟는 반면, 부모에 대한 효성은 등한시한다.
자식을 위하여서, 심지어는 애완동물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돈을 쓰면서도 부모를 위해서는 적은 돈도 아까워하고, 노부모가 병이 나면 늙어서 그런 것이려니 한다.
또한, 우리들은 자식이 자신에 대해서는 효성을 다하기를 바라면서, 자신은 자신의 부모에 대해 등한시한다.
오늘은 두암의 글을 생각하며 하루를 열어본다.
이웃집에서 닭을 기르고 있는데, 그 닭이 자신의 새끼 닭을 몹시 사랑하여, 혹 자신의 어미 닭에게서 먹이를 빼앗아다가 자신의 새끼 닭에게 먹이기도 하였다.
그 다음해에 그 새끼 닭이 자라나서 다시 또 병아리를 깠다.
그러자 그 새끼 닭도 역시 자신이 깐 병아리를 사랑하기를 그의 어미 닭이 자기를 사랑하듯이 하였다.
어느 날 그 어미 닭이 부엌 부뚜막 위에 흘려져 있는 밥알을 발견하고 쪼아 먹으려고 하였다.
그때 그 새끼 닭이 달려와서 그 어미 닭과 싸워 밥알을 빼앗아다가 자기가 깐 병아리에게 먹이기를, 마치 작년에 그의 어미 닭이 자신에게 먹이기 위하여 자신의 어미 닭과 싸우듯이 하였다. 내가 그것을 보고는 탄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 작년에 그의 어미 닭이 자신의 새끼 닭을 기를 적에 어찌 올해에 그 새끼 닭이 또 그 어미 닭이 그 할미 닭에게 하듯이 자신의 먹이를 빼앗아서 자기 닭의 병아리에게 줄 줄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무릇 사람이라고 이름 하는 자들도 역시 이와 같다.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들은 열이면 열 사람이다
그런 데 반해, 자기의 자식을 사랑할 줄 모르는 자는 백 사람 중에 한 사람 정도 있을까 말까 하다.
또 부모의 은혜를 제대로 갚지 못하는 자들은 백이면 백 사람이 다 그런 데 반해, 자식이 자기에게 보답하기를 바라지 않는 자는 천 사람 중에 한 사람 정도만 있다.
이와 같은 자들은 바로 작년의 그 어미 닭과 같은 것이다.
바야흐로 자신이 자신의 어미 닭과 싸워서 자신의 새끼 닭들에게 먹일 적에는, 그 새끼 닭이 자라나서는 또다시 자신에게서 먹이를 빼앗아 새끼 닭의 병아리들에게 먹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