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실현이 되는 그 순간
공사를 시작하는 순간은 도시와 건축의 관계들을 건축가의 머릿속에서 정리한 결과물이 실현이 되는 순간입니다.
건축은 수많은 관계들(장소와 장소, 구축 요소와 장소, 구축 요소와 구축 요소 등)이 결국 형태로 드러나야 합니다. 형태로 드러나는 순간 하나의 실체로서 그리고 결과로써 우리의 현실에 마주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은 지금 우리가 처한 시대적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 다듬어진 형태로서 우리에게 나타나려면 두 가지의 중요한 개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개념은 바로 "공시성과 통시성"입니다. 이 단어는 다시 쉽게 설명하자면 "보편성과 특수성"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특수성은 우리에게 주어진 장소라는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소는 수많은 세월 동안 변해가는 도시에서 어느 한 시기에 건축가에게 주어지는 현실입니다. 항상 같을 수 없고 같은 장소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할 수 있습니다. 건축가는 이러한 특수성의 성격을 지닌 주어진 장소에 앞서 말한 관계들을 잘 정리하여 그 관계들을 재정립합니다. 이 과정에서 꼭 함께 필요한 것이 계획의 보편성입니다. 수많은 관계들을 정리하여 실체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건축가는 건물을 구성하는 구축 요소(벽, 기둥, 지붕)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구축 요소에 대한 사용법은 이미 인류가 시작되는 원시시대부터 본능적으로 인식하며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긴 세월 동안 많은 변화들을 겪어오면서 인류는 구축 요소를 다양하게 활용하였습니다. 벽은 벽으로서, 기둥은 기둥으로서 그리고 지붕은 지붕으로서 그 역할을 잘 해냈습니다. 건축역사를 들여다보면 구축 요소를 그 시대에 맞도록 항상 재해석해왔습니다. 이렇게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어느 한 시대에 유행한 방식을 우리는 'ㅇㅇ시대 양식'이라고 말합니다. 형태로 드러날 땐 전혀 다른 모습들로 나타났지만 벽, 기둥, 지붕들은 항상 자신의 역할과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건축에서는 이렇게 장소의 특수성과 계획의 보편성이 항상 동반되어야 합니다. 제가 아주 존경하는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모네스티롤리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장소의 특수성과 계획의 보편성 안에서 우리의 프로젝트는 완성된다"
위의 모네스티롤리 선생님의 말을 잘 생각하면서 청함재가 우리의 현실에 하나의 실체로 드러나는 순간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려고 합니다.
건물이 올라서기 위한 땅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인접한 도로의 높이와 땅의 높이를 동일하게 맞추는 작업인데 흙을 채워 넣을 수 있도록 콘크리트 옹벽을 세우려고 철근과 거푸집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입니다. 이 날 날씨가 매우 더웠지만 많은 분들께서 수고해주신 덕분에 시공이 매우 잘 되었습니다.
사진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청함재 땅 바로 밑쪽에 위치한 이미 지어진 집입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집은 뒷집에 당연히 옹벽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저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저 위치에 안방과 거실을 배치하였습니다. 우리가 가끔 산책을 하거나 도시를 거닐 때 매우 자주 볼 수 있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정말로 건축가가 고민하였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주변에 모두 비어있고 경관이 좋다고 창문을 아무 곳에나 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청함재를 공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업체 분들과도 이 이야기에 대한 경험들을 많이 나눴습니다.
저는 이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이탈리아 건축가로서 그곳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계획단계에서 도시를 먼저 바라보고 계획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비어있는 땅들도 잘 분석하면 앞으로의 모습들을 예측하여 도시의 형태를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내 건물이 주인공이 될지 조연이 될지 선택할 수 있게 되는데, 이탈리아 건축가 알도로시는 도시의 건축(Architettura della città)이라는 책에서 도시형태학(Morfologia urbana)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도시를 분석하는 수많은 방법들에 대한 숙제를 건축가들에게 남겼습니다. 청함재는 저러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도심 속 단독주택이라면 주변에 건물들이 어떤 모습으로든 꽉 차게 될 것임을 예상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으로 청함재는 이 지역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추후에 주변에 지어질 건물에 기준을 세워주는 도시의 조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건물의 기초가 완성되면 건축가와 건축주는 동일한 현장을 서로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보면 건물의 전체적인 틀과 공간들이 상상의 벽과 함께 실체로서 다가오지만 건축주의 시선으로 보면 집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아 보이면서 기대했던 것보다 실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 건물의 기초는 말 그대로 기초이기 때문에 벽도 없고 아직 공간에 대한 개념이 몸으로 또는 시각적으로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 편에서 제가 다룰 내용은 벽이 서고 지붕이 만들어지면서 건물을 구성하는 구축 요소들에 대해 더 다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각각의 위계질서가 있듯이 건물을 구축하는 각 요소들도 위계를 가지면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관계 안에서 각 요소들이 조화롭게 구성된다면 아름다움까지 지닐 수 있게 됩니다. 청함재도 앞서 말한 내용들을 전부 지켜가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부족한 부분들이 여전히 있지만 건축가는 항상 자신의 건물을 크리틱 하며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해야 하기에 앞으로의 모습들이 더욱 기대될 수밖에 없다고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