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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Dec 01. 2021

[버닝] 청춘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 리뷰

어느덧 청춘이라고 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내가 청춘을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사람들이 ‘좋을 때네~’라고 말하는 그런 나이. 청춘이라는 단어에 걸맞다고 하는 그런 나이. 이게 청춘이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돈으로 살 수 없는 젊음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괜스레 우쭐해지기도 한다. 아마 몇십 년이 지나 할머니의 나이가 되면, 목이 찢어져라 내 나이가 어때서를 열창하며 지금이 바로 청춘이라고 바득바득 우기고 있겠지. 청춘이 뭔지도 모르면서......


‘아프니까’ 청춘인 걸까? ‘아파야’ 청춘인 걸까?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나 자신을 보고 있자니 내게 있어 ‘청춘’은 너무나도 먼 나라 얘기 같다. 그리고 영화 ‘버닝’의 이창동 감독님은, 청년들의 삶에 ‘청춘’이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이기를 거부한다.

지금 젊은이들은 자기 부모세대보다 더 못살고 힘들어지는 최초의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세상은 발전해오고 앞으로 나갔지만, 더는 좋아질 것 같진 않죠.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힘들어지는 현실의 대상이 무엇인지 분명했다면, 지금은 무엇 때문에 자기 미래의 희망이 안 보이는지 찾기가 어렵죠. 그런 무력감과 분노를 품은 젊은이들이 일상에서 미스터리를 마주하는 내용입니다.- 이창동 감독

해미(좌)와 종수(우)


종수(유아인)의 마음이 너무나도 잘 이해돼 우울했다. 영화 속 현실이 지금의 현실과도 닮아있는 것 같아 괴로웠다. 형체가 없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갈망하는 불안한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였고, 그와 대비되어 미래가 보장된, 안락한 삶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이 둘의 차이로 인해 비참한 현실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종수의 말대로, 벤(스티븐 연)과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벌써부터 어린 나이에 좋은 차와, 좋은 집이 있을까. 종수는 삶을 살아가는 게 그렇게나 버거운데.      


해미(전종서)는 아프리카에 갔다 온 얘기를 하며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냥 저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다고. 이후 해미는 세상 속에서 종적을 감춘다. 힘든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것일까. 자신의 삶은, 아름다운 청춘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벤에게 있어 ‘비닐하우스 태우기’는 단순한 취미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은유를 내 식으로 해석해 보자면, 그 비닐하우스는 물질 그 자체라기보다는 ‘해미’였을 것이다. 해미로 대표되는 사람들. 벤이 그들에게 남긴 계층 의식에 의한 상처는, 그들을 울렸을 것이고 그렇게 그들이 세상 속에서 사라지도록 했을 것이다. 결국 종수는 벤을 살해하지만, 수많은 벤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수수께끼와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감독의 의도와 비슷하게, 종수의 삶 역시 끝까지 수수께끼였을 것이라 생각하니 쓸쓸했다.


우리의 분노를 다 태우고 나면, 청춘을 찾을 수 있을까요?     


‘청춘’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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