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마음에도 온기를

목욕탕

by 쉼 아카이브

날이 찹찹해지면 제일 먼저 피부가 반응한다.

안 그래도 건조한 피부는 더욱 극성으로 치닿고 나는 급하게 바디오일을 주문한다.

하지만 아무리 샤워를 하고 로션을 발라도

그때뿐이다.

그나마 촉촉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목욕탕에 가는 것이다.

나에게 목욕탕은 한 겨울 굶주렸을 때 먹는

돼지국밥만큼의 가치를 지닌다.

노곤한 몸을 뜨끈한 탕에 담그면

굳어버린 마음까지 속절없이 녹는 느낌이랄까.

내가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의 선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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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엄마 없이 혼자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었을 때 '내가 진짜 독립했구나' 하고

느꼈던 묘한 기분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내가 원하는 만큼만 때를 밀 수 있다니

이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해 보면 엄마는 목욕탕에서 나올 때쯤 항상 발갛게 상기된 볼을 하고 녹초가 되어 있었다.

자기 몸도 밀고 내 몸도 밀고 동생 몸도 밀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어쩌면 엄마에게는 더 큰 자유가 생긴 것이다.


사우나에 혼자 가면 제일 불편한 점은

등을 밀 수가 없다는 건데,

옛날엔 동네 목욕탕에 가면 동그란 모양의

초록색 때밀이 기계가 있었다.

돌돌이라고 아시려나.

버튼을 누르면 때밀이 원형판이 돌아가고

거기에 등을 갖다 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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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용은 안 해봤다. 못해본 걸 지도.

저기 앉아서 등을 문대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이용하는 분을 본다면

눈을 마주치지 않는 편이 서로에게 좋다.^^

하지만 이 기계는 이제 보기 힘들다.

아마 코로나 때부터 더 급격히

사라지게 되지 않았을까?


목욕탕에 가면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모든 연령대의 나체를 볼 수 있는데,

평소에 내 몸만 보다가 이렇게 종종

남의 몸을 보면 뭔가 생경한 기분이 든다.

시간이 흐르면 나도 지금보다 더 탄력을 잃고

구석구석 나이테가 깊어지겠지?

세월과 중력의 힘을 거스를 수 없으니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서글퍼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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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에이징이 유행이던데,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되

진행 속도를 늦춰 건강하게 나이 들기를

바라는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한다.


똑똑하고 건강한 생각이다.

비록 겉모습은 늙어갈지라도,

내면은 젊고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일상생활 중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지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따뜻한 탕에 들어가 메마른 몸을 녹이듯

살면서 건조해지는 마음도

온기와 부드러움을 머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온탕에서 푹 불려 묵은 때를 벗기고

밖으로 나와 시원한 공기를 맞으면

세상 상쾌한 기분이 든다.

거기다가 바나나우유를 먹는 것은 국룰!

세상 행복한 어른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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