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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채록 Sep 23. 2023

기억과 역사를 재구성해 공간을 새롭게 전하다

DMZ Docs  <숲길을 걷는 시간> <인천메탈시티> <각자의 방식>

‘다큐멘터리, 오늘을 감각하다’라는 슬로건 아래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지난 9월 15일부터 21일까지 8일간의 축제를 진행했다. 오프라인 상영관인 CGV고양백석과 메가박스 벨라시타를 비롯해 자체 스트리밍 플랫폼 VoDA를 통해 상영작들을 볼 수 있도록 하여 관람에 최적화된 공간에서 작품을 경험하게 하고, 때론 나만의 공간에서 작품을 깊이 볼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였다.


VoDA를 통해 <숲길을 걷는 시간>, <인천메탈시티>, <각자의 방식> 세 편의 단편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기억과 역사를 재구성하여 공간을 새롭게 조명한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재구성하여 우리가 놓치고 지나갔던 것 혹은 평소에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어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 다큐멘터리 장르가 가지는 강점인 것 같다. 이러한 장르의 특성을 잘 보여준 세 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숲길을 걷는 시간>(2023, 김단아)은 경의선 숲길의 풍경과 사적 기록들을 연결해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하고자 하는 감독의 마음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니가 있어’라는 가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이런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로 작품 제목을 ‘기억을 걷는 시간’으로 붙여도 좋을 것 같다. 걷는 길 위로 풍경과 다른 목소리가 펼쳐지는데 공간을 다층적으로 느껴지게 하였다. 이러한 연출 방식이 꽤 인상적이었다. 전화 속 음성, 야외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 TV를 보며 대화하는 소리 등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자료들이 이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대화를 데이터로 남기고, 영상으로 담게 되었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 작품을 보며 과거에 본 <웰컴 투 X-월드>(2020, 한태의)라는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엄마의 삶을 기록하고, 가족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을 보며 당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삶을 기록하고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게 되었지만, 그 이상 나아가진 못했다. <숲길을 걷는 시간>도 일상의 기록, 가족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인천메탈시티>(2023, 조은성)는 90년대 헤비메탈의 성지였던 인천을 조명한 다큐멘터리이다. 그동안 헤비메탈은 음악장르 중에서도 가장 비주류라 생각했는데,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껴 이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다. 작품은 당시 활동했던 뮤지션, 음악평론가 등의 인터뷰와 헤비메탈 밴드들의 공연영상, 당시 인천의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을 함께 제시하며 이곳이 헤비메탈의 성지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의 전성기였던 90년대의 한 페이지를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음악감상실에서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보고 들었다는 사실이 생경하면서도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헤비메탈이라 하면 귀를 찢을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모든 걸 씹어먹을 것 같은 위압적인 이미지만 떠오를 뿐 특별히 떠오르는 곡이 없는데, 당시에는 인천에서 103일간 매일 릴레이 콘서트가 이어질 정도로 뮤지션도 관객도 많았다는 점에 놀라우면서도 왜 그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한편으론, 인천의 유명 록 페스티벌인 ‘펜타포트’가 열릴 수 있었던 기반에는 이런 음악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이 작품을 보기 이전엔 인천이라 하면 공항, 차이나타운, 월미도 등을 떠올렸는데 이제는 음악을 함께 생각할 것 같다. 도시의 역사라 하면 보통 지역적 특징이나 인물, 사건 등으로 좁혀 생각하기 마련인데 역사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폭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각자의 방식>(2022, 김시연·박서은)은 ‘고립과 고독의 연대’라는 주제 아래 전시를 준비하던 두 명의 작가가 마라도에서 한 나무를 발견하고, 그 나무를 제주도로 옮겨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을 보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나이지리아의 속담과 함께 지금의 나로 존재하기까지의 과정을 나무를 통해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라도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길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던 나무는 두 명의 작가에 의해 발견되고, 제주로 가기까지 많은 이들의 손길이 닿고 또 미술관 전시장으로 들어가기 위한 여러 사전 작업을 거치면서 나무는 세 조각으로 나뉜다. 그리고 나무는 ‘마라73’이라 이름 붙여진다. 우리 삶도 그러한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님에 의해 이름 붙여지고, 사회를 통해 자라난다. 많은 선택을 하고 또 선택받는 순간을 통해 지금의 나로 거듭난다.


‘마라73’은 2021년 3월부터 6월까지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린 《空의 매혹 : 고립과 고독의 연대》에서 ‘피로 : 마라 73, 잃어버린 조각들’이라는 작품명으로 미디어아트와 함께 전시되었다. 다큐를 보기 전에 ‘마라73’을 보았다면 나는 그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라는 질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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