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사람이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역사학과 기록학을 전공했습니다. IT 베이스의 아카이브 SI회사에서 컨설팅과 경영 업무를 했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여러 가지 일을 짬뽕해서 해왔습니다. 그런데 개발의 디테일을 잘 아느냐고 물으시면, 솔직히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 제가 동적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Lovable이라는 AI 도구를 사용해서요. 무려 이틀 만에 큰 틀을 만들고, 사나흘간 매만진 끝에 결제시스템까지 붙였습니다. 운영 가능한 서비스가 된 겁니다.
저는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기록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기관의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개인의 기억을 체계화하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당사자가 되었습니다. 기록의 대상이 아니라 기록을 남기는 주체로서, 동시에 사업을 일으키는 사람으로서요.
사업개시일 2025년 12월 17일. 이 날짜가 제 기록 어딘가에 남겠지요. 그리고 첫 매출이 들어온 12월 17일 밤도요. 통장 내역이라는 이 무미건조한 기록이, 지금 이 순간 제게는 가장 감정적인 아카이브입니다.
첫 매출이 큰 금액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업자에게 매출은 그 자체로 소중합니다. 누군가 제가 만든 서비스에 가치를 느꼈다는 것, 그 가치에 대가를 지불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이 실제로 작동했다는 것. 시장이 '네 서비스가 필요해'라고 말해준 것이니까요.
저는 예전에 기록학의 시각 전환에 대해 쓴 적이 있습니다. 공급자 중심에서 이용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요. 기록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록을 만들고 활용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요. 사업도 마찬가지라는 걸 이번에 뼈저리게 느낍니다. 제가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아키비스트로서 저는 늘 '증거'의 힘을 믿어왔습니다. 이 첫 매출은 제가 할 수 있다는 것의 증거입니다. AI 도구를 활용하면 비개발자도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의 증거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수요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다음 주에는 어떤 이야기를 기록하게 될까요? 저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