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차. 2025 마지막 일요일

by 아키비스트J

크리스마스 저녁, 잠깐의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사람이 북적북적한 광화문 크리스마스 마켓에 들렀습니다. 유난히 추운 날씨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분위기에 취했다가, 집에 와서는 와인 한 잔에 노트북을 폈습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습니다. 일하면서 이렇게 즐거운 적이 있었나?



# 세 개의 뇌가 협업 중

이번 주 웹사이트 에디터 버그를 고치면서 흥미로운 발견을 했습니다. Claude Code에게 설계와 분석을 맡기고, Lovable AI에게 실행을 시킨 다음, 제가 검토하고 피드백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것입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게 바로 'Human in the Loop'구나 싶었습니다. 두 AI가 각자 잘하는 걸 하고, 저는 방향만 잡아주면 됩니다. 예전 같았으면 개발자를 찾아 설명하고, 일정을 조율하고, 비용을 협의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생각의 속도로 실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배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AI에게 명확한 지시를 내리는 법, 결과물을 검토하는 눈,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 내가 판단해야 할 영역'과 'AI에게 맡겨도 될 영역'을 구분하는 감각이요. 하지만 이 과정 자체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마치 작은 회사 조직을 꾸리는 것 같달까요? 1인분의 사람을 배치하는 대신 0.6~0.7인분 정도 되는 AI가 자리잡고 있지만요. 인건비가 무지하게 저렴하긴 합니다마는 제가 잠자는 시간이 꽤 많이 줄었습니다. 제 워크플레이스 조직도를 그려보았는데 벌써 5개 본부의 20개 AI 에이전트가 일하고 있더군요. 일일이 일하라고 지시해야 하는 게 흠이니, 이걸 어떻게 자동화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되겠습니다.


# 잔인하지 않은 크리스마스 선물

사업자가 나온 지 일주일 째인 이번주, 처음으로 핀잔 비슷한 말을 들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좋은 말만 들었거든요. 잘한다, 대단하다, 응원한다, 어떻게 그런 멋진 결심을 했냐.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업할 때 칭찬만 듣다 보면 빨리 망한다고요. 다른 시선에서 내 사업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기르지 못하기 때문이랍니다.


그 말이 맞았습니다. 비판을 들으니, 잠재고객이나 파트너가 처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과 경우의 수를 계산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한 가지 더 깨달았습니다. 그분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제 비전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요. 그 사실이 오히려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정말 불가능한 게 맞다. 오히려 일찍 알아서 다행이다." 그러나 나의 비전과 함께 하는 몇 명과 함께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강해졌거든요.



# 행정 과제물

사업자등록증만 받으면 끝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진짜 시작이더군요. 통신판매업 신고, 여성기업 등록, 결제 시스템 계약. 업태와 업종에 따라, 서비스 형태에 따라 신고하고 신청해야 할 것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무원 담당자나 토스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나름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이메일을 보내거나 신청서를 제출하기 전에 두어 번 꼼꼼하게 확인할 것. 정보는 개조식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것. 보완서류가 필요하면 내 사정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구체적인 도움을 구할 것.


상대방의 업무 편의를 배려하면, 결국 내 업무도 빨리 끝납니다. 기록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알아야 할 원칙인데, 막상 당사자가 되니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 다듬는 시간

사이트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었습니다. 오류와 버그도 꽤 잡혔고, 워크플로우도 제대로 돌아갑니다. 이제는 본격적인 서비스 시작 전, 정책과 내용을 다듬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일의 순서를 정하고, 순서마다 할 일을 만들고, 수행하고, 반복합니다. 이것도 상당히 몰입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지루하게 느꼈을 이 과정이, 지금은 다르게 느껴집니다. 온전히 내 것을 다듬는 일이라 그런 걸까요?


올 한 해는 정말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라고 부를 만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일을 대하는 태도일지 모릅니다. 해야 하는 것에서 하고 싶은 것으로. 의무에서 즐거움으로.


크리스마스 밤, 홀로 술 한 잔 홀짝이며 일하면서도 이것 또한 즐겁구나 생각했던 그 순간이, 어쩌면 창업 2주차의 가장 큰 수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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