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아카이브 시리즈] 재건의 아카이브, 외상 후 성장을 위하여
우리는 모두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합니다.
※ 본 글에는 9/11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기록한 사진과 서술이 함께 작성되어 있습니다. 재난상황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면 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글을 적는 내내 참담한 마음이 멈추지 않습니다. 하물며 당시 모든 장면을 목도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날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9/11 메모리얼(9/11 Memorial & Museum)에서는 온라인 웹사이트과 오프라인 전시장에서 생존자들의 구술사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만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일부 서술한 정도입니다. 궁금했던 내용은 레베카 솔닛이 저술한 <이 폐허를 응시하라>(정해영 옮김, 도서출판 펜타그램, 2012)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눈을 들었을 때 하늘에 점 같은 게 보였어요. 그게 내 시선을 붙들었죠. 그건 하늘에서 떨어지는 남자였어요. 그는 마치 공기를 붙잡으려는 듯 팔다리를 휘저으며 떨어졌죠. 그때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남자를 도울 수 있을까? 죽어가는 이 사람과 소통할 방법이 없을까? 모르겠어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러고 마지막 10여 층에서부터 그가 떨어지는 모습을 내내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의 손을 잡고 어떻게든 소통하려고 애썼죠.
마이클 노블(당시 모건 스탠리 사 근무, 남쪽 건물 66층에서 대피), <이 폐허를 응시하라> 283쪽
"바로 몇 블록 밖에서 짙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속에 들어가면 누구든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절대로 연기 속으로 들어갈 순 없었죠. 질식할 게 뻔했거든요. 그런데 연기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어요. 나는 마냥 달렸고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던 게 생각납니다. 나는 비교적 침착했고, 동료들보다 조금 빨랐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서로 잃어버리지 않도록 잠시 멈춰 서서 속도를 조금 늦추고 그들을 기다려야 했죠."
존 길포이(당시 대학 운동부 학생), <이 폐허를 응시하라> 284~285쪽
"내가 우리 동네로 돌아갔을 때 몇몇 이웃들이 길모퉁이에서 돈을 모금하고 있었죠. 우리는 모금의 용도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들은 사람들에게 뭔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서 돈을 모으기 시작한 거였어요.
거리에서 누군가가 구조대원들에게 장화와 마스크가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구조대원들에게 필요한 물품이 무엇인지, 그것들을 어디에, 어느 교회에 전달하면 되는지를 적은 게시판이 올라갔어요.
9/11에서 나는 우리에게 공동체가 남겨졌다는 것, 사람들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있음을 여전히 믿는다는 것, 우리가 계속 전진할 수 있으며, 또 계속 전진할 거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어요. 모두가 서로를 지탱하고 끌어안기 위해 서로를 붙잡고 있다는 것도요. 그건 무서우면서도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나는 그때까지 살면서 아주 드물게 느꼈던 집단의식을 그때 느꼈어요. 그러고보면 그런 감정은 늘 엄청난 공포에 직면했을 때 느꼈죠. 9/11 직후 처음 며칠간의 짧은 시간동안, 나는 우리가 민권운동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느꼈어요."
템마 캐플런(역사학자, 당시 뉴욕시민), <이 폐허를 응시하라> 298~299쪽
레베카 솔닛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진 이타주의와 공동체적 연대 의식이 9/11 이후 여러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합니다. 시민사회의 생명력과 더불어 폭력에 대한 애정과 연대의 힘을 보여주었다고 주장합니다.(<이 폐허를 응시하라> 333쪽)
이후 그라운드 제로(파괴된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재건사업을 진행하고, 특별법 격인 9/11 Memorial Act가 제정되는 과정에까지 공동체는 곳곳에 영향력을 심고 발휘했습니다.
※ 이 글은 필자가 2024년 9월 11일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기록과 사회>에 게재한 글을 일부 편집, 수정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