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을 담은 아카이브: 공익활동을 연결하고 확장하다
이전의 아카이브는 자료의 색인과 레코드 관리에 그쳤습니다. 30대 이상의 독자들이라면 어린 시절 공공도서관에서 도서카드로 책을 찾아보던 추억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제 별명은 책벌레였는데, 큰 지역도서관에서 책냄새에 파묻혀 살던 때가 떠오릅니다.
책을 읽으려면 찾아야겠지요. 우선 내가 찾고자 하는 책의 제목이나 저자 이름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책의 제목이나 저자명을 알지 못하면 찾을 수 없는 구조입니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아래 그림처럼 서랍을 열어 해당하는 제목이나 저자를 찾습니다. 001-000-000 등의 일련번호로 구성되어 있는 서가번호를 보고 책이 꽂혀 있는 서가까지 걸어갑니다. 거기서 이리저리 둘러보다 책을 찾아내죠. 가끔 사서 선생님이 미처 정리하지 못해 찾는 자리엔 빈 칸만 남아 있거나, 트롤리처럼 생긴 이동식 책 정리대에서 우연히 읽고싶었던 책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내가 찾고 싶은 책을 찾을 수도 있고, 혹은 관심있는 분야를 카테고리 목록에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딱히 특정한 제목이나 저자를 알지 못해도 웹사이트에서 쉽게 검색해볼 수 있습니다. 희귀한 자료들도 공개만 되어 있다면 온라인에서 찾아보는 건 일도 아닙니다. 이 이면엔 누군가가 신간 도서와 자료를 데이터베이스에 계속 추가하고, 기존의 자료가 손상, 유실, 열화 등으로 변했다면 그 상태를 정리하여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사서가 하는 일입니다.
아카이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는 색인 목록과 카드로 정리하던 기록을 데이터베이스에서 정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환경으로의 전환이 큰 몫을 했습니다. 단순히 디지털 디바이스를 쓰고, 인터넷 망이 생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기록물을 ‘보존’하는 수동적 일에서 벗어나서 ‘활용’하려는 능동적 움직임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기록해서 남기는 행위는 나중에 누군가가 써먹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물리적 공간에 정리되어 있는 것보다는 데이터로 관리되는 게 활용도가 높겠지요. 내가 필요하다면 로컬 공간에 다운로드 받을 수도 있고, 데이터세트를 활용해 의미있는 통계를 뽑아낼 수도 있을테고요. 여기저기 다양한 아카이브를 검색해서 내가 만들고 싶은 숏폼을 만들기도 합니다.
기술의 도입은 아카이브 운영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기록하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여러 데이터를 풍부하게 획득할 수 있도록 바뀌었고, 온라인에서 아카이브를 찾아보는 일도 평범해졌습니다.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카이브의 핵심은 여전히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맥락과 가치판단에 있습니다. AI 만능설을 부정하는 이유입니다. AI는 유용하고 필수적인 도구이지만 디지털화 과정에서 정서적, 문화적 요소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섬세한 참여와 기술의 조화를 통해서 맥락이 지켜지는 아카이브를 만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필자가 2024년 11월~1월에 걸쳐 서울공익활동지원센터 공익희레터에서 연재한 <공익활동을 연결하고 확장하다>를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