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해변에서 혼자 추는 왈츠

사랑이라는 '거대한 유사(Similitude)'에 대하여

by 첫빛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 <사랑에 관하여(About Love)>의 한 구절과 월트 휘트먼의 시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소개하고 싶다. 이 두 텍스트는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자, 우리가 마주할 고독의 본질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가슴이 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면서, 우리의 사랑을 방해했던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불필요하고 사소한 것이었으며, 얼마나 기만적인 것이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사랑을 할 때에는 행복이나 불행, 죄악이나 덕성보다 더 고귀한 것에서 출발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 안톤 체호프, <사랑에 관하여> 중


"거대한 유사가 모든 것을 결합시킨다. 모든 시간, 모든 형태, 모든 생명체들... 이 모든 것은 거대한 유사가 결합하고 감싸 안고 있다." — 월트 휘트먼, <밤의 해변에서 혼자> 중


1. 단념의 형벌: 남아있는 사랑이 주는 무게

안톤 체호프의 <사랑에 관하여>는 과거에 놓쳐버린 절실한 사랑을 회상하는 알레힌의 고백으로 시작된다. 그는 도덕적 책임과 상대의 평화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사랑을 '단념'한다. 기차가 떠나고 안나와 영원히 이별한 순간, 그는 깨닫는다. 자신들을 가로막았던 체면과 가난 같은 고민들이 사랑이라는 거대한 감정 앞에서는 얼마나 '사소하고 기만적인 것'이었는지를.

하지만 깨달음은 언제나 늦고, 단념의 대가는 가혹하다. 알레힌은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그의 마음속엔 사랑이 소멸하지 않고 '고여' 있다. 몸은 도덕적 잣대에 맞춰 바르게 살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죄악이라 불리는 그 사랑에 저당 잡힌 분열된 상태. 이것이 바로 체호프가 말한 고통의 본질이다. 어쩌면 함께 떠나 비난받는 것보다, 마음속에 사랑을 남긴 채 박제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더 큰 형벌일지도 모른다.


2. 투신의 파국: 어리석을지언정 나만의 역사를 쓰다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영희(김민희 분)와 <우리도 사랑일까>의 마고(미셸 윌리엄스 분)는 알레힌과는 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들은 사회적 관습이라는 본질을 깨부수고 자신의 실존적 욕망을 선택한다. 마고는 "새것도 결국 헌 것이 된다"는 진실을 알면서도 당장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왈츠를 추듯 투신하고, 영희는 세상의 지탄을 감수하며 고립을 자처한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비겁한 변명'이라 비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문학은 정답을 제시하는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흔들리는 인간의 '실존'을 기록하는 매체다. 시간이 흐른 뒤 그 선택이 어리석었다고 자책할지언정, 폭풍 속으로 뛰어들어 온몸으로 겪어내고 얻은 후회는 타인의 지시대로 살며 얻은 평온보다 가치 있다. 그것은 박제된 일상이 아닌, 내가 직접 운전하고 써 내려간 '나만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3. 실존적 결단: 후회하지 않는 삶이 아닌, 감당하는 삶

여기서 우리는 '하고 후회하는 쪽'의 실존적 가치를 발견한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단독자'처럼, 영희와 마고는 군중의 안락함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진실 앞에 홀로 선다. 그들은 사회의 규칙을 어기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혼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비극적인 결말일지라도 '나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은, 평생 남의 눈치를 보며 그리움에 잠식된 알레힌의 삶보다 덜 비겁하다. 영희가 해변에서 처량하면서도 묘하게 당당해 보이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그 지독한 고독과 후회를 자신의 '삶의 무게'로 오롯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결국 성숙이란 후회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후회를 기꺼이 감당하는 삶일지도 모른다.


4. 고독과 연결: 밤의 해변에서 마주한 '거대한 유사'

욕망의 끝에서 그녀들이 마주한 것은 지독한 고독이다. 마고는 화려한 소음 속에서 홀로 놀이기구를 타고, 영희는 밤의 해변에서 홀로 서성인다. 그러나 이 철저한 고립의 순간, 역설적으로 우주적 연결이 시작된다. 사회적 관계라는 껍데기가 다 벗겨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꾸미지 않은 진짜 나를 만난다.

이때 느끼는 처절한 고독은 월트 휘트먼이 노래한 '거대한 유사(Similitude)'로 이어진다. 나의 슬픔, 내가 바라보는 별, 발등을 적시는 파도가 모두 거대한 하나의 흐름 속에 맞물려 있다는 우주적 진실. 영희가 혼자 해변에서 잠드는 행위는 세상과의 연결은 끊어졌을지언정, 우주의 근원적인 질서와 대면하는 실존적 수행과도 같다.


결론: 사랑이라는 이름의 실존적 왈츠

도덕은 '행위(떠남)'를 요구하지만, 예술은 '마음(남아있음)'을 기록한다. 사랑은 스위치처럼 켜고 끌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평생 '단념의 상실감'과 '투신의 후회' 사이에서 갈등한다.

어리석을지언정 자신의 진실에 투신하여 기꺼이 혼자가 된 이들, 그리고 그 고독 속에서 우주적 유사를 발견하는 이들. 그들이 밤의 해변에서 혼자 추는 왈츠는 비록 쓸쓸할지언정 가장 뜨겁게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몸짓이다. 우리가 그들의 선택을 비난하기보다 숨죽여 지켜보게 되는 이유는, 우리 역시 언젠가 그 해변에서 혼자만의 왈츠를 추게 될 단독자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