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요즘 힘들어... 이런 소리를 하면 무책임해 보이겠지? 생각하는 사람
나는 고민이 있을 때, 남에게 말하는 걸 꺼려했다. 고민을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상대가 도와줄만한 것도 없는데, 내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은 징징 거림이자 책임 회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만난 지인 A 씨를 보며 이런 생각이 바뀌었다.
지인 A는 자신의 고민을 서스름 없이 털어놨다. 가끔 별 것 아닌 것도 있지만, 가끔은 '이런 것까지 말해도 돼?' 싶은 어려움도 있었다. 지인 A의 토로를 듣고 있자면 가끔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더욱 신기한 것은 그의 스토리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들었더 고민과는 다르게 어떠한 무책임함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왜 일까? 분명 그동안 상대가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는데, 지인 A 씨에게서는 왜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고민 잘 이야기하는 법을 찾기 위해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동안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면, 대부분 그럴 싸한 말로 포장했지만 결국 '대신 판단해 줘'였다. 가령, "나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고민이야."라는 고민은 '짜장면 먹을지 짬뽕 먹을지 대신 선택해줘.'와 같은 속 뜻을 담아 이야기했다. 이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지금 나 짬뽕 대신 짜장면 먹고 싶은데, 그러면 후회할 것 같거든? 그러니 짬뽕 포기하고 짜장면 먹었을 때 내가 할 후회를 네가 대신 책임져 줘'라는 뜻이 담겨있었다. 이런 식의 고민은 듣는 이를 부담스럽게 했다. 자기 대신 판단과 책임을 요구하는 상대의 말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대를 무책임하고 어리숙하다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A 씨의 고민 토로는 달랐다. A 씨의 고민 이야기는 순전히 자신의 감정 공유 혹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의견 수렴이었다. 지인 A 씨는 자신이 겪은, 혹은 겪고 있는 고민을 동화책 읽듯 말했다. 중간중간에 내 의견을 묻긴 하지만 내게 어떠한 판단도 요구하지 않았다. 지인 A 씨가 하는 고민 이야기는 자신의 '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자신의 고민에 대해 상대에게 조언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았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상대를 전혀 탓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서 무책임함 보다는 열정적임을 느꼈다. 고민을 쭉 늘어놓지만 징징거림, 어리숙함 보다는 적극적임과 어른스러움을 느꼈다. 그가 하는 것은 책임 회피가 아닌 진짜 고민 공유였다.
어려운 상황은 어떠한 판단에 대한 리스크가 클 때다. 이때 나는 혼자 그 위험을 모두 짊어지기 싫어 간혹 상대에게 의견을 요구했다. 이런 태도는 내 문제에 남까지 끌어들이는 매우 무책임한 태도였다. 그렇다 보니, 나는 무책임해 보이기 싫어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꺼려했다.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서 끙끙 앓았다. 하지만 이는 문제를 더욱 지연시켰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고민 이야기가 무책임해 보이는 것은 그 사람이 고민을 이야기해서가 아니라 이처럼 그 사람의 판단을 요구해서다. 자신의 고민을 탈 없이, 원활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단 것을 인정해야 한다. 상대에게는 공감이나 조언 이상의 어떤 것도 결코 바래서는 안 된다.
이를 깨닫고 스스로 판단을 내릴 때 우리는 고민을 말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지인 A 씨 덕분에, 이런 교훈과 함께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