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불쌍하지 않습니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보고. 그들은 정말 불쌍한가?

by 토미융합소

텔레비전 채널을 쭉 돌리다 보면 익숙한 광고가 나옵니다. 아프리카에 사는 빵 하나 제대로 못 먹는 아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치료비가 모자란 아이, 할머니와 둘이 사는 어린이 등. 사람들의 힘든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후원을 요청하는 광고들입니다. '불쌍하다', '가엾다', '불행해 보인다', '안타깝다'. 그 영상 속 아이들을 보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입니다. 광고를 쭉 보다 보면 정말 가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합니다. 간혹 저들을 도와주지 않고 채널을 넘기려 하는 제 자신에게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불쌍한 사람들이 참 많구나, 나는 그들을 도와줘야 하는 복 받은 사람이구나 생각이 듭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한 때 일본을 발칵 뒤집어 놓은 '스가모 어린이 방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부모가 모두 떠난 네 아이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부모가 모두 떠난'과 '아이들'이라는 조합은 텔레비전 후원 광고 영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아이들의 불쌍하고 가여운 모습을 보여주고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겠거니 싶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영화에는 가여움, 불쌍함 같은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습니다. 어디에서도 인물들의 감정은 폭발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그저 담담하고 진솔하게 아이들의 삶을 묘사했습니다.


기존의 영화는 고통을 받는 사람과 가해를 하는 사람을 명확히 나눕니다. 슬픈 장면, 화나는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조작해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그렇다 보니 영화 속에서는 분노, 슬픔 등 단순한 감정밖에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조작이 없습니다. 엄마는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떠나지만 아이들과 같이 사는 동안 아이들에게 폭력은 물론 나쁜 소리 한 번 하지 않습니다. 집을 떠난 후에도 가끔 아이들을 위해 돈과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이들 역시 가난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폭력을 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찾아간 ‘아버지인지 모를 아저씨’는 그에게 생활비를 지원해주고, 그가 자주 가던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은 그에게 편의점 폐기물을 챙겨줬습니다. 영화는 너무 나쁜 사람도 너무 착한 사람도 없는 현실적인 세상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영화의 여운은 더욱 강렬했습니다.




영화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회 문제들 제대로 마주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그동안 보아왔던 각종 영상들은 아이들이 처한 힘겨운 상황을 특정한 몇 명(가해자들)에게 모두 떠넘겼습니다. ‘저 아이들의 부모가 악마라서!', '무책임한 부모들 때문에.'와 같이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의 문제를 사회문제가 아닌 가정사로 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마치 길에 쓰러진 고양이를 보는 것처럼 아이들의 삶은 불쌍하고 도와주고 싶긴 하지만 나와는 관계없는 일 정도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와 같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풀어내는 영상은 아이들의 문제를 사회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줬습니다. 그들이 겪는 삶의 문제는 결코 특별하거나 다른 세상 속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 일상 속에 녹아 있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기존의 매체의 불쌍한 사람들의 영상은 그들의 자극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장치는 우리에게 동정심을 유발합니다. 동정심은 자신을 남의 고통을 지켜볼 수 있는 우위 집단의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고, 힘든 삶을 사는 아이들을 우리가 도와줘야 할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아이들의 진정한 스토리는 모른 채 이러한 동정심에 의해 그들에게 일방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도움은 아이들의 자립심을 뺏고 자신을 영원한 피해자나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류의 영상보다는 영화 '아무도 모른다'와 같은 진솔한 스토리를 다루는 영상이 사회 문제를 다루는데 더욱 효과적이라 생각합니다. 진솔한 스토리로 구성된 영상은 우리에게 동정심보다는 공감을 일깨워 줍니다. 불쌍하다 가엾다는 생각보다는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게 합니다. 당사자의 눈높이에서 선입견 없이 세상을 보여주는 것은 우리에게 그들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우리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다 직접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저는 불쌍한 이들의 진짜 스토리에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방송에서 보이는 단편적인 모습, 그 사람들이 처한 극한의 환경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 사람들의 삶에 진심으로 공감하기보다는, 이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이니까', '불운한 사람이니까'하는 생각으로 그들을 나와 분리시켰습니다. 그들을 단순한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그들과 관련된 사회문제는 제대로 조명받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아마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통해 불편한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붙이는 '불쌍하다'는 꼬리표는 사실 그들의 이야기를 가리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알게 모르게 그들과 나를 분리시키며 그들을 차별하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사회에 일어나는 각종 문제의 해결은 그 사람들을 동정하는 것에서부터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는 그런 의미에서 사회의 이면을 잘 보여준 훌륭한 영화인 것 같습니다.




unnamed.jpg 영화 <아무도 모른다> / 이미치 출처 : 구글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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