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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미융합소 Jun 21. 2020

공유 전동 킥보드의 두 얼굴

막차가 끊겼을 때 이제는 뭘 타야 합니까?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강남에서 맥주 한 잔 하였습니다. 3,4시간 정도 수다를 떨며 오래 묵혀왔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러다 시계를 봤는데 이런, 막차 시간이 지났더군요. 제 친구들은 모두 집이 멀어 택시를 타고 가야 했습니다. 저는 다행히 현재 살고 있는 곳이 강남역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이라 공유 전동 킥보드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밤이라 사람도 거의 없고, 강남역 대로를 따라 일자로 가면 되는 길이라 별생각 없이 킥보드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서초 1교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찰관이 갑자기 멈추라는 사인을 보냈습니다. 솔직히 조금 당황은 했지만, 뭐 딱히 잘못한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순수히 경찰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안전모 미착용하셨습니다.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보여주세요”


 그렇습니다. ‘안전모 미착용’. 잘은 모르지만 바퀴 달린 것을 탈 때는 안전모를 착용해야 한다 하더군요. 사실 저는 지금까지 공유 킥보드를 타면서 한 번도 안전모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전동 킥보드를 소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 킥보드를 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안전모를 들고 다닐 수는 없었거든요. 게다가 지금껏 안전모를 쓰고 공유 자전거나 공유 킥보드를 타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제 기억으로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안전모를 꼭 써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억울한 감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법을 어긴 건 어긴 것이니 일단은 주민등록증을 보여줬습니다. 


 안전모 착용 위반 벌금 딱지가 때이고 이제 끝인가 싶었는데, 음주 여부를 묻더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맥주 한두 잔 밖에 마시지 않았고 전동 킥보드도 음주단속 대상이 되는지 몰랐기 때문에 아니라고 발뺌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술을 마신 거는 사실이니 인정하고 순수히 음주 측정에 응했습니다. 차도 없고 면허를 따고 난 후 운전을 해본 적도 없는 터라 사실 음주측정을 하는 것이 굉장히 떨렸습니다. 음주측정 수치에 따른 형벌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상태라 어떤 벌을 받게 될지 상당히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혈중 알코올 농도가 상당히 미비하게 나와 사실상 훈방 조치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고 결국 안전모 미착용으로 벌금 2만 원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됐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로써는 조금 억울한 부분도 있습니다. 서울 사시는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밤에 강남에서 3km 떨어진 거리라면 택시비를 더블로 주지 않는 이상 택시가 잡히지 않습니다. 카카오 T를 하루 종일 켜놔도 정말 한 대도 안 잡힙니다. 막차도 끊긴 상황에서, 이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자연스레 전동 킥보드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오늘은 전동 킥보드를 타고 돌아와야지!’ 하는 생각으로 밖에 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대비해 미리 헬멧을 준비하기는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헬멧이 마스크처럼 휴대하기 쉬운 것도 아니어서 만약을 위해 항상 헬멧을 들고 다니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선택지는 1) 불법임을 알면서도 경찰들 눈을 피해 전동 킥보드를 타거나 2) 3km가 넘는 거리를 걸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나름 안 보이는 곳에서라도 법이나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 생각하는 저로써 이런 상황은 매우 난감할 따름입니다.


 헬멧을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전동 킥보드를 타는 사람 중 헬멧을 안 쓰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헬멧을 써야 한다고 인식하는 것조차 힘듭니다. 만약 정말 사회가 전동 킥보드를 타는 데 있어 헬멧 착용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공유 전동 킥보드 업체가 공유 헬멧을 함께 서비스하던지, 킥보드 헬멧 단속을 매우 엄격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유 간이 교통수단을 늦은 밤 귀가 용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할 거라면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게 해 줄 만한 마땅한 교통수단을 제시해 줘야 합니다. 



 현재의 공유 전동 킥보드의 상황은 마땅한 대책도 없이 탁상행정식으로 규칙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할 거면, 그것을 하지 않아도 될 마땅한 대안을 제시해줘야 합니다. 법은 국민들을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섭니다. 지금의 전동 킥보드 법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규제하고 그것을 어기는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한 법안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솔직히 앞으로 강남에서 늦게까지 놀게 될 경우 집까지 어떻게 가야 할까 막막합니다. 그래도 아마 헬멧을 휴대하고 다니는 일은 결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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