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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미융합소 Jul 15. 2020

공포심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벌레 공포증(2)

 앞선 이야기 (나는 왜 벌레를 무서워했는가)에서 제가 벌레를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줄곳 벌레에 대한 극심한 공포증이 있었습니다. 그 공포는 나도 모르는 두려움과 본능적인 무서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이러한 무서움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나는 원래 벌레를 무서워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불현듯, 내가 ‘왜 이 조그마한 아이들을 무서워하지? 목숨 걸고 싸우면 내가 질리기 없잖아!?’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 조그마한 녀석이 내 목숨을 뺏어 갈 수도 없을뿐더러 이 녀석들이 위협을 느끼면 느꼈지 제가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생각 끝에 저는 이에 대한 두 가지 원인을 찾아냈습니다. 1) 학습된 공포, 2) 무서운 상상력이 바로 그것입니다.



1) 학습된 공포

 앞서 말했듯, 저는 어릴 적 벌레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제가 5-6살이던 시절에는 컴퓨터 게임도 잘 보급돼 있지 않아 항상 아파트 풀 숲이나 근처 공원에서 벌레를 잡고 놀았습니다. 그때는 나비, 잠자리, 개미 등 무엇하나 무서워하지 않고 함께 친구처럼 놀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밖에서 나가서 노는 시간이 줄어들고 집에서 노는 것이 더 좋아졌습니다. 그때부터는 벌레는 오직 매체를 통해서만 만났습니다. 매체에 나오는 벌레들은 언제나 끔찍했습니다. 잠든 사이 사람의 귓구멍에 들어가는 벌레, 사람의 피부를 괴사시키는 벌레, 사람들에게 끔찍한 병을 옮기는 벌레 등. 매체 속에서 벌레는 징그럽고 더러운 존재로만 묘사되었습니다. 또한 주변에서는 항상 벌레가 나오기만 하면 ‘그거 더러운 거야 만지지 마!' 또는 '벌레 만지면 큰일 나요!'등과 같이 벌레는 항상 피해야 하고 만지면 큰일 나는 생명체인 것처럼 묘사했습니다. 결국 실제 벌레들과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고 벌레의 무섭고 끔찍한 모습만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어느샌가 벌레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2) 무서운 상상력

 이러한 공포심은 저에게 벌레에 대한 무서운 상상력을 발휘하게 해 주었습니다. 사실 지금껏 제 주변에 단 한 명도 벌레 때문에 큰 병이 생기거나, 사소한 생채기 이외의 무지막지한 피해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의 거대한 상상력은 벌레가 가지는 살상력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집에 갑자기 민달팽이가 나오는 날이면 이 녀석이 내 몸속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하게 되고, 어쩌다 꼽등이를 보게 되면 이 녀석의 몸에서 연가시가 나와 나의 살을 파고 들어가는 상상을 하게 됐습니다. 바퀴벌레가 나온 날이면 자는 동안 바퀴벌레 때가 내 몸을 뒤덮고 나를 질식사시킬 것만 같았습니다. 이렇게 글로 써보면 분명 너무나도 우습고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란 걸 알지만, 어느샌가 제게 이런 상상은 너무나도 진지하게 다가왔습니다. 벌레를 마주하는 순간 갑작스레 떠오르는 각종 상상들은 이보다 더욱 위험한 각종 생명체들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했고 몸을 굳고 떨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벌레를 쫓아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나의 공포심은 나를 멈추게 했고 오히려 나를 그 자리에서 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러한 공포심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벌레는 공포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내 몸 뿌리 깊이 박히게 되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벌레는 결코 무서운 생명체가 아닙니다. 어떤 생명체 건 (사람이건 동물이건 벌레 건) 모두 각자 나름의 특징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각자의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더욱 다양하고 풍요로워집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오면서 벌레와 저 사이의 그러한 특징 차이를 '공포'로 교육받았습니다. 벌레가 가지는 각종 특징들이나 행동은 오직 나를 해치는 나쁜 것, 해로운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교육은 저를 벌레 혐오자로 만들었고 벌레를 마주했을 때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저는 다른 공포심 또는 혐오감도 이와 비슷한 원인에 의해 생기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와 다른 생명체가 가지는 특징에 대해 경험이 아닌 이야기만으로 교육받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매체나 메신저는 특정한 생명체(혹은 집단)에 대해 자극적이고 편향적인 이야기를 주로 전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을 더욱 강하게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상대와의 직접적인 경험이 없는 채, 쌓이고 쌓이게 되면 우리는 결국 알 수 없는 공포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무서운 상상력'으로 변하여 직접적으로 경험한 적 없는 거대하고 두려운 상대를 만들어 냅니다. 상대와의 직접적인 교류도 없는 상태에서 이미 생겨버린 이러한 공포심과 혐오감은 제가 벌레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처럼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더욱더 그 상대와 자신을 멀어지게 만듭니다.


 20 몇 년 동안 제 몸에 쌓인 벌레에 대한 공포감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벌레를 보면 깜짝깜짝 놀라고 두려움에 심장이 뜁니다. 하지만 그 공포를 마주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가 전혀 그들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있어도 태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들이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보고자 노력합니다. 몸속에 오랜 기간 쌓인 공포의 퇴적물들은 쉽게 깨어지지 않아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 조각 한 조각 열심히 덜어내는 중입니다.



 여러분도 다른 무언가에게 알 수 없는 공포심이나 혐오감을 느끼고 있지 않나요? 저는 공포심의 근본적 원인은 매체만 믿은 채 '직접 경험'하지 않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여러분도 자기 자신이 싫어하는 어떤 존재와 직접 마주해보는 게 어떨까요? 마음속에 퇴적된 공포심을 조금씩 걷어낼 때 삶이 더욱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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