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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미융합소 Sep 21. 2020

할머니의 잔소리.

여러분의 주변엔 잔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저는 현재 코로나 19의 재확산으로 서울에서 잠시 내려와 고향에서 지내는 중입니다. 부모님께서는 고향에서 농촌생활을 하고 계신 터라 고향집은 온통 제 차지입니다.


 우리 집 앞동에는 외할머니가 사십니다. 외할머니는 항상 이것저것을 챙겨주십니다. 할머니께서 많은 신경을 써주신 덕분에 저는 여러 가지로 편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하시는 할머니의 잔소리는 그런 마음을 사라지게 합니다. 약 10여 년을 혼자 지내온 저는 스스로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것들 역시 모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저만의 방법이 있고 저만의 루틴이 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자신의 방식을 제게 강요합니다. 그리곤 항상 한 두 마디씩 덧붙입니다.


'네는 맨날 늦게까지 자고 맨날 밥 굶제?', '밥도 안 먹고 안 먹는 것도 이리 많아서... 쯧쯧... 그러니 네가 삐쩍 말랐지', '빨래가 왜 이리 없니, 니 씻지도 않나!?'


 뭐 제가 실제로 그렇게 생활한다면 충고로 듣겠지만 항상 아침 9시에 일어나 하루 3끼를 꼬박 챙겨먹고, 운동도 꾸준히 하는 제게 그런 말은 별로 좋게 들리지 않습니다. 물론 할머니께서 걱정하셔서 그런 거 겠지만, 실제로 제가 엄청 신경을 쓰는 부분에 대해서 그렇게 단정 지어 얘기해버리니 저로서는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께서 이렇게 잔소리 하시는 이유는 뭘까요? 종종 이런 질문을 하면 주변에서는 ‘그건 다 할머니가 너를 걱정해서 하는거야.’ 또는 ‘할머니에게 너는 아직 어린애야.’ 등과 같은 얘기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결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할머니께서는 아직 정정하시고 관절 부분 빼고는 딱히 불편하신 곳도 없으십니다. 그런 분이 저런 비이상적인 논리로 저에게 잔소리를 하실리는 없습니다.


 할머니께서 잔소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뭘까요? 이를 위해 저는 할머니의 삶을 관찰해보기로 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제게 항상 밥을 강조하십니다. "밥을 많이 먹고 밥도 꼬박꼬박 꼭 챙겨 먹어야 해" 이 말을 듣고 저는 할머니께 질문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께서 밥을 많이 먹으라고 하시는 이유가 뭐예요?"

“밥을 먹어야 건강하고 밥을 먹어야 힘이 나지!"

 그렇다면 할머니께서 밥을 걱정하시는 건 저의 건강 때문이라는 건데, 그러면 꼭 밥이 아닌 건강한 식습관으러 괜찮지 않은가? 다시 물어봤습니다.

“할머니 그러면 밥 말고 샐러드나 깨끗한 음식 먹으면 되지 않아요?”

“그래도 밥을 먹어야지 사람이. 밥이 제일 중요한 거야."


 그 말을 듣고 저는 ‘아 할머니께서는 밥을 굉장히 상징적으로 여기시는구나. 그러면 일단 할머니께서 주시는 밥을 최대한 다 먹자'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할머니께서 주신 밥을 꼭 다 먹도록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밥을 다 먹고 난 후 과자와 아이스크림까지 권하셨습니다. 저는 식사 후 그런 당도 높은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밥도 다 먹었겠다, 이건 이해해주시겠다 싶어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여전히 "이 놈아 네가 그렇게 안 먹으니 살이 안 찌지. 야는 하여튼 안 먹어!"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듣고 나니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아...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은 내가 정말 음식을 잘 먹기를 바라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구나.'


 할머니께서 잔소리하시는 것을 쭉 들어보면 대부분 생활과 관련된 소리입니다. 그것은 할머니께서 우리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소재입니다. 살아온 시대가 다르고 생활해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할머니와 저 사이에는 공통된 관심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생활에 관련된 것이라면 할머니와 저 사이의 공통 관심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나이를 먹고 나름의 방법과 노하우가 생기고 나니, 저에게는 더 이상 할머니의 방식이 필요 없게 됐습니다. 저에게는 내게 편한 방식과 나에게 맞는 루틴이 생겼습니다. 그러고 나니 이제 더 이상 할머니의 생활 이야기가 필요 없어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할머니와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할머니는 자신과 손자와의 관계를 끝까지 유지하고 싶으셨을 겁니다. 쓴소리를 하고 조금 과격한 방법을 쓰더라도 자신의 존재를 저에게 알려야겠다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잔소리로 표현되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현재 외삼촌네 식구와 함께 살고 계십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들과도 어떠한 공통 관심사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할머니는 오로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생활에 대한 부분에서만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자신의 생활지식 마저 쓸모 없어지려고 하니, 할머니께서는 잊혀져 버릴거라는 두려움을 느끼신 것입니다. 이 두려움은 할머니를 잔소리와 화로 무장시켰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자신의 주장이 맞고 자신의 방식이 정답이라고 우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할머니의 행동은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잊혀지지 않기 위한 할머니의 마지막 존재감의 표현이었습니다.


 

가을, 나무에 나뭇잎이 떨어지듯이 사람은 나이가 먹을수록 자신의 주변 관계가 하나 둘 져 갑니다. 나이가 먹을수록 가장 힘든 것은 그렇게 끊어지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외로움은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말이 없어도 이어지는 유대감에서 외로움은 사라집니다. 할머니께서는 현재 그런 끊어져 가는 유대감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안간힘을 쓰시고 계십니다.


 할머니께서 나에게 해주는 잔소리는 그에 대한 아우성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동안 할머니께서 잔소리를 하시는 부분에 대해 정말 나에게 문제가 있나? 어떻게 하면 그것을 바꿀 수 있을까? 등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그것의 속에는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가 들어있었습니다.


 이제 할머니의 잔소리를 들을 때면 웃으며 들어드리려 합니다. 나와 다른 생활방식이나 나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하시더라도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머니와 나누려 합니다. 할머니께서 필요하신 것은 ‘할머니의 요구대로 바뀐 나’가 아니라 ‘할머니의 말을 잘 들어주는 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현재 주변에 잔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계신가요? 그분은 현재 외로움 속에 살고 계시지는 않나요?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어쩌면 나의 진짜 변화보다 나의 관심을 바라는 것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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