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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미융합소 Sep 04. 2020

우리는 왜 사는 걸까?

삶의 의미란. 내가 죽고 난 후에 남는 것은?

 우리는 왜 사는 걸까? 왜 사는지에 대한 물음은 수천 년 동안 계속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지 사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우리는 숱하게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오늘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의 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장면은 조사병단의 단장인 엘빈이 죽음을 직면한 병사들에게 연설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한 병사와 엘빈은 이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차피 죽을 바에는 마지막까지 싸우다 죽으라는 건가요?”
“그렇다.”
“아니, 어차피 죽을 거라면 어떻게 죽든 명령에 불복종하고 죽더라도 아무 의미 따윈 없겠죠?”
“반박할 여지조차 없이 그렇다. 반박할 여지조차 없이 무의미하다. 제 아무리 꿈이나 희망을 품고 있더라도 행복한 인생을 보낼 수 있었다 할지라도 바위에 맞아 몸이 산산조각 나더라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엘빈의 말처럼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어떤 개기로든 결국 죽습니다. 어떤 꿈을 가지던, 어떤 희망을 가지던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습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죽을 수 있는 삶. 이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앨빈의 다음 말은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줍니다.


“그렇다면 인생에는 의미가 없는 것인가? 애초에 태어난 것조차 의미가 없는 것인가? 죽어간 동료들도 그러한가? 그 병사들도 전부 무의미했단 말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그 병사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그 용감히 죽어간 자들을 가엾이 죽어간 이들을 떠올리며 기릴 수 있는 것은 살아 있는 우리들뿐이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죽고! 다음으로 살아갈 이들에게 그 의미를 맡긴다!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이 잔혹한 세계에서 저항해나갈 방법이다!”




 삶의 의미. 여러분은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일단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좋든 싫든지 간에 저마다의 의미를 찾아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랑을 위해, 돈을 위해, 명예를 위해.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정말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의미들은 우리의 몸이 죽고 난 후에도 영원히 지속될까요? 내가 죽고 나면 나의 삶은 의미는 어떻게 기억될까요?


 사람이 죽는다면 저는 ‘자신의 의미’는 모두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자기 속으로만’ 가지고 있던 의미는 모두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진격의 거인 엘빈의 말처럼 자신의 삶에 대한 영원한 의미는 타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자신이 어떤 의미를 추구하며 살았는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았는지 그 사람이 죽고 난 후에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죽고 난 후 남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았던 삶에 대한 남은 이의 기억과 해석뿐입니다. 결국 한 사람의 삶의 의미는 남겨진 이들의 기억 속에서 해석되는 과정에서 나온 의미뿐입니다. 다시 말해 인생에 있어 영원히 남는 삶의 의미는 타인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에 의해 영원한 삶의 의미가 결정되는 삶을 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남겨진 이들이 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살았는지 뿐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아무리 대단한 야심을 품고 엄청난 의미를 갖추었다고 한들 그것이 삶에서 표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억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의미를 표현하며 살아야 합니다. 삶의 의미를 생각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20세기 최고의 혁명가 체 게바라는 쿠바 국립은행 총제직을 내려놓고 혁명을 위해 아프리카로 떠납니다. 독립영웅 안중근 의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합니다. 분명 체 게바라보다 안중근 의사보다 삶에 더한 의미를 가졌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우리가 해석하는 것만큼 삶에 큰 의미를 가지고 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모두 기억하고 그들의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들이 죽었음에도 여전히 입에 오르내리며 그들의 삶을 기억합니다. 이렇듯 그들의 삶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회자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살아서 의미를 쫓아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지, 사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에 대한 해답은 어느 정도 나온 듯합니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증명받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만이 그것을 증명해줍니다. 자신의 의미를 지키고 그것을 행동하며 사는 삶.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은 갑작스러운 죽음이 찾아와도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산 사람만이 엘빈과 그 병사들의 삶처럼 남겨진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고 기억되면서 영원히 의미 있게 남을 것입니다.


현재 나는 자신의 삶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결국에는 사라져 버릴 연기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나'라는 사람이, 이 시간 이 곳에 살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너무나도 연약한 이 목숨을 꿋꿋이 이어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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