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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ur Oct 26. 2020

[8월 9일] 조국에서 달릴 수 있는 젊은이는 행복하다

손기정 기념관(옛 양정고등학교 구관)

2016년 여름 우리는 리우 올림픽으로 뜨거웠다. 태극전사들의 열정적인 모습은 우리를 잠 못 들게 했다. 한참 올림픽 경기를 보고 있는데 딸아이가 내게 물었다.

"아빠! 그런데 우리나라 선수들 중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처음으로 딴 사람은 누구예요?"
난 이 질문에 자신 있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몇몇 방송사에서 우리나라의 올림픽 도전사(史)를 다룬 프로그램을 봤기 때문이다.

"손기정 선수. 1936년 8월 9일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어."

스스로 뿌듯해하며, 내 대답에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 포털사이트에서 손기정 선수의 사진을 검색해서 보여줬다. 순간 딸아이의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왔다.

"응? 그런데 왜 손기정 선수 옷에 일본 국기가 있어?"
이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려면 역사가 나와야 했다. 답이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일단

"그때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점령한 시기였어. 그래서 손기정 선수도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옷에 달고 일본 선수로 올림픽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답이 딸아이의 궁금증을 모두 해결해 주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결국 그 주 주말 난 아이를 데리고 만리동2가에 있는 손기정기념관으로 갔다.

기념관에서 난 며칠 전 부족했던 답변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내 장광설이 지겨웠는지 이미 아이는 관심 밖이었다. 빨리 가지고 온 킥보드를 타며 체육공원을 휘젓고 싶은 것 같았다. 결국 공원에 나가서 놀라고 한 뒤 나 혼자 기념관을 둘러봤다. 마음 한쪽에는 일부러 데리고 왔는데, 아빠의 설명을 들어주는 척이라도 좀 하지 라는 마음에 서운했다. 기념관에는 어린 시절 달리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소년 손기정의 모습과 우승을 했던 베를린 마라톤 경기 상황이 상세하게 설명돼 있었다. 기념관 마지막. 할아버지가 된 손기정 옹의 사진과 그의 말이 적혀 있었다.

'조국 땅에서 구김살 없이 달릴 수 있는 젊은이는 행복하다.

그들이 달리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


문구를 본 순간 '손기정기념관'이 기념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현재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 주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순간 그 기쁨을 표출할 수 없었던 그의 심정이 이 글을 읽으며 공감됐다. 동시에 손기정체육공원은 기념관 그 자체보다는 공원 전체가 기념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체육공원 안에서 주민들은 그 어떤 방해도 없이 뛸 수 있고 땀 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손기정기념관이 있는 만리동2가 일대의 근대건축물들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지 않다. 그래서 난 만리동2가 일대를 '숨겨진(Hidden) 근대건축물 밀집지역'이라 부른다. 그렇다 보니 몇몇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들의 활용 범위가 유연하다는 나름의 장점도 있다. 충정아파트와 딜쿠샤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고 충정각이나 만리재로 205번지 건물(現 베리 스트리트 키친)은 음식점으로 쓰이고 있다. 손기정체육공원 내 근대건축물 세 동 중 한 동은 기념관이지만 나머지 두 동은 예상외의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만리동2가 일대와 달리 서울에서 가장 잘 알려진 근대건축물 밀집지역은 덕수궁 주변, 정동 일대다. 정동에 있는 근대건축물들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용도도 대부분 전시관, 역사관 등 문화 및 전시시설이다. 그래서 난 정동 일대를 '공인된(Authorized) 근대건축물 밀집지역'이라 부른다. 두 지역은 지금은 허물어진 한양도성의 밖과 안이었다.

손기정체육공원 내 세 채의 적벽돌 건물은 모두 양정고등보통학교 교사(校舍)였다. 세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구관(1918)이 현재 손기정기념관이다. 후관(1927년)은 청소년 독서실, 서관(1949년)은 체력단련실 및 생활체육교실로 쓰이고 있다. 지금까지 봤던 근대건축물 중 이곳만큼 예상을 깨는 용도는 없었다. 비록 건물 내부에서는 건물의 옛 흔적을 느낄 수 없지만 근대건축물이 독서실, 체력단련실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이곳을 방문했을 때 주말이었음에도 청소년 독서실에는 근처에 사는 중고등학생들로 붐볐고 체력단련실에는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체육공원 내 축구장, 테니스장, 배드민턴장에도 팀을 이루어 경기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말 그대로 '생활체육의 장'이었다. 오히려 체육공원 내에서 기념관이 가장 한산했다.

손기정기념관과 체육공원에는 다른 기념관들이 지니고 있는 기념비성이 없다. 당연히 무언가를 기념하라는 강제성도, 권위도 그리고 무거움도 없다. 공인된 근대건축물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헐거움과 가벼움이지만 그래서 손기정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지역주민들에게 이곳은 운동을 하는 공원이고 청소년들에게는 친구를 만나 공부하는 곳이다. 그곳에는 손기정의 이야기보다 사람들의 '일상'과 '생활'이 있다. 일상과 생활 속에서 누군가를 기념할 수 있다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기념관이 또 있을까?

기념관을 나오자 딸아이의 킥보드가 내 앞을 지나쳐 갔다. 딸은 지금이 즐겁고 신났다. 커다란 손기정의 두상과 올림픽 우승 때 받았다는 월계수 묘목이 자란 기념수가 내 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기정은 자신을 기념하는 방법으로 자신에 대한 긴 설명, 번듯한 기념관보다는 즐겁게 킥보드를 타는 딸의 모습을 원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딸아이의 모습을 초등학생 손기정이 가장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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