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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ur Oct 30. 2020

[9월 4일] 날아라 날아 태권V~

태권도원 / 삼우설계

우리나라의 국기(國技), 태권도를 주제로 한 공간을 하나 만들어보자는 논의가 시작된 건 1996년이었다. 당시 대한태권도협회 이사회에서 '태권도성전건립위원회 구성'을 결의했다. 그러다 1998년 4월, 문화관광부는 대통령 업무보고 때 특별추진과제로 '태권도공원 조성계획'을 보고했고 2000년 4월 '태권도공원조성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후보지 신청을 접수했는데, 11개 시도, 27개 자치단체가 신청했다. 4년 뒤 '태권도공원 조성추진 기본계획'이 수립됐고 춘천, 무주, 경주 중 무주가 태권도공원 조성부지로 최종 결정됐다. 그럼 왜 무주였을까? 무주군이 태권도와 무슨 특별한 관련이 있었을까?

무주군은 1990년대 초반 동계올림픽 유치를 놓고 평창군과 경쟁관계였다. 그러다 2002년,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 신청에서 평창군이 IOC에 단독 유치 신청을 냈고 정부도 이를 지지했다. 물론 태권도공원 부지선정과 동계올림픽 유치 간의 빅 딜(Big Deal)설을 일축하는 의견도 있다(관련기사: 전북일보, 2014.09.02자 기사). 어째됐든 무주군으로 태권도공원 조성부지가 결정 나고 '재단법인 태권도진흥재단'이 창립됐다. 태권도진흥재단은 대한태권도협회, 세계태권도연맹, 국제태권도연맹 그리고 국기원에 이어 태권도를 콘텐츠(contents)로 하는 다섯 번째 집단이다.

2006년 개최된 세계태권도연맹 정기총회에서 9월 4일을 '태권도의 날'로 정했다. 1994년 9월 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0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기 때문이다. 2008년에는 '태권도공원 마스터플랜 국제지명초청설계경기'가 개최됐는데, 여기서 와이즈/만프레디(Weiss/Manfredi, USA)가 제안한 '어센딩 페시지(Ascending Passages)'안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건립공사를 위해 턴키(Turn-key) 방식으로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건축설계는 삼우설계, 조경설계는 CA조경이 맡았다. 삼우설계는 2008년도에 선정된 '와이즈/만프레디의 마스터플랜을 더 한국적이며 태권도를 상징할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라고 밝혔다. 

태권도원 건립 부지는 백운산 북쪽 사면으로 ' >'자로 꺾인 골짜기를 따라 폭이 좁고 긴 형태다(폭 500m, 깊이 2,500m). 접근로는 무설로가 유일하다. 와이즈/만프레디는 대상지가 지니고 있는 역동성과 태권도가 갖는 역동성을 선형과 형태로 매칭(Matching)시키면서 설계안을 풀어냈다. 그리고 이런 개념을 강조하고자 건물이 될지 조경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됐든 선(Line)들을 활용해서 표현했다. 그 선들은 직선의 강인함과 이 둘을 연결하는 곡선의 유연함이 마치 물 흐르는 듯한 태권도 동작을 연상시킨다.

2009년 9월 기공식을 갖은 태권도공원은 2012년 2월 정식 명칭을 '태권도원'으로 변경하고 2014년 4월 개원했다. 그리고 개원 1년이 지난 2015년 3월, 1년 간의 성적표가 공개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일었다. 1년 동안 태권도원을 방문한 사람은 188,813명으로 한국개발연구원이 추산한 2016년 이후 연간 방문객 195만 명에 10%도 못 미쳤다(출처: 전북도민일보, 2015.03.06자 기사). 원인은 태권도원 주변에 연계할 수 있는 뚜렷한 관광지가 부족하다는 것과 인근에 조성될 민자지구 사업 진척이 더디기 때문이라는 것. 여기에 태권도원의 상징물인 태권전과 명인관 건립이 기부금 모금이 어려워 완공 여부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을 더할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 큰 원인은 아니다. 태권도원이 그나마 실패하지 않은 국책사업이 되기 위해서는 민자지구 개발이 필수이고 민자지구 개발의 성패가 민자사업자 유치에 달려있다면 태권도원은 현재 땅에 지어지면 안 됐다. 

태권도원은 지방균형발전 차원으로 행해지는 대규모 국책사업치고는 '태권도'라는 콘텐츠가 확실했다. 그런데 그 확실함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턴키라는 방식으로 구현하려고 하다 보니 건물과 조경설계가 뻔해졌다. 건물과 외부공간 디자인 개념을 진행시키면서 '태권도→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기(國技)→한국성→전통성'으로 연결되는 뻔한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무언가 구축 가능한 대상이 있는 건물의 경우는 태권도 품새라는 역동적인 형태적 특징으로 설계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구축 가능한 대상이 없는 조경은 태권도라는 콘텐츠가 한국성, 전통성으로 흘러 결국 소쇄원과 같은 전통조경공간을 떠올리는 전략으로 흘렀다.

명인관과 태권전은 한옥이다. 그런데 태권전은 태권도의 성지라는 상징성이 최정점에 달해야 하는 공간이지만 그러기에는 아우라(Aura)가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 드라마 세트장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올림픽에서 태권도 전종목 석권을 한 선수가 이곳에서 기를 받아 우승했다는 스토리 정도는 신화처럼 들려오고 그 이야기를 듣고 태권도로 자식 진로 결정해보려는 학부모들이 기의 끄트머리라도 받으려는 열성이 더해지면 태권전의 아우라가 깊고 두터워질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전망대도 태권도 일여품새를 반영한 상징공간으로 구현하고자 했단다.

사실 태권도원은 그 전 명칭이 태권도공원이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건축물보다는 외부공간 설계가 중요한 시설이다. 그리고 외부공간의 설계 개념과 전략을 떠나 '조경(Landscape)'이 'Land'와 'Shape'이라는 단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라는 점을 감안하면, 태권도원 외부공간의 형상은 와이즈/만프레디가 마스터플랜에서 그렸던 선형이 가장 강하게 남은 부분이다. 


조경설계를 담당한 CA조경은 태권도원 조경설계의 기본방향을 '태권도원과 무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9곡 8경의 전통조경 비법을 통해 극대화'한다라고 했다. 태권도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예이기 때문에 한국성과 전통성을 표현해야 한다는 진부한 흐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CA조경은 이러한 기본방향에 맞춰 태권도 정신이 담긴 5가지 조경 이야기 -'순백의 첫인상, 노란 단풍과 황토 중정에서 나를 극복하다. 소쇄원을 닮은 전통정원, 대자연에 동화하다, 마음으로 명상하다'- 를 설정하고 거기에 맞는 조경 수목을 선택했다. 그런데 누가 이런 의도를 알 수 있을까?

현재 태권도원 외부공간에서 볼 수 있는 전통건축으로 만들어진 정자나 긴 돌담, 천수답 수련 폭포, 아주 작게는 맷돌을 박아놓은 바닥 등에서는 최소한 전통을 강요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T1경기장에서부터 천을 건널 때마다 만들어진 5개의 다리 -백원교, 황원교, 청원교, 적원교, 흑원교- 는 태권도 띠와 전통 오방색의 상징을 너무 직접적으로 표현하려는 방식이 조악하다. 사실 전통조경에서 다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엇인가를 -대개는 그 무엇은 '물'이 된다- 넘어간다는 상징은 전통조경이 표방하는 이상향 혹은 현세와는 단절된 세계로의 건너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와이즈/만프레디가 제안한 마스터플랜에서도 'Ascending Passages'라는 전략을 구현할 때 6개의 다리가 각 영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현재 태권도원 내 다리는 '색으로 구별되어야 한다'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접근성이 나쁜 입지, 시설을 배치하는데 제약을 주는 대지 형태 그리고 태권도라는 콘텐츠가 전통, 한국성으로 너무 직접적으로 연결되면서 현재 태권도원은 여러 가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 한계를 벗어나려는 목적으로 방문객 수를 늘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민자지구 개발의 더딘 진행도 어쩌면 그 한계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태권도원은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명확한 해답이 될 수 있는 태권도라는 콘텐츠로 만들어진 공간다. 태권도원만큼은 대규모 사업비가 투입된 국책사업이 기본적인 시설운영비조차 자체 조달하지 못하는 상황을 '태권도'라는 콘텐츠를 통해 빠져나올 수 있다. 땅(입지)은 바꿀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태권도원에 와야 하는 이유를 만드는 건 다른 문제다. 만약 땅의 약점을 태권도라는 콘텐츠로 극복할 수 있다면 태권도원의 조성 목적은 달성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무엇인지를 태권도인 누구라면 안다. 하지만 그 무엇을 아는 것과 그것을 활용하는 건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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