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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ur Oct 30. 2020

[10월9일]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국립한글박물관 / 도시인 건축

10월 9일이 한글날로 지정된 근거는 1446년(세종28년) 9월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是月訓民正音成”라는 <세종실록>의 기록이다. 처음 한글날이 만들어진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1926년이다. 주체는 조선어연구회. 한글날의 최초 명칭은 ‘가갸날’이었는데, '가갸'는 '가갸거겨...'에서 따왔다. 한글이라는 말이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명칭을 붙였다. 가갸날이 한글날로 바뀐 해는 1928년이고 1931년에는 음력 9월 29일, 양력 10월 29일 한글날로 정했다. 그러다 1945년 광복 후 여러 가지 날짜 환산을 통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10월 9일로 정해졌다.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는 ‘훈민정음’ 자체가 아니라 훈민정음을 설명한 한문해설서인 <훈민정음해례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하였다. 이 책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0호로 지정됐다. 한글을 주제로 하는 박물관을 국가 상징물로 짓겠다는 대통령 업무보고는 2009년 12월에 있었다. 당시 건립 부지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과 서빙고로 사이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듬해 3월 <국립한글박물관 건립 기본계획> 수립, 4월 건축설계 용역 현상공모 시행, 6월 설계안 선정, 2011년 1월 건축설계 및 전시설계가 차례로 완료됐다. 그리고 7월에 착공된 한글박물관은 2013년 8월 준공됐고 2014년 2월에 전시 공사를 끝낸 뒤 그해 제88번째 한글날에 개관했다.

한글박물관 현상설계에서 가장 염려됐던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글의 생김새가 기하학적이라는데 있었다. 응모작들이 모두 한글의 기하학을 건물의 형태로 발전(?)시킬 것 같다는 걱정이었다. 현상설계 결과 이런 염려와 걱정은 현실이 됐다. 응모작들 대부분은 한글 자음의 형태를 건축의 형태로 연결시켰다. 자음 ‘ㅇ’, 'ㅅ' 등을 닮은 건축물이 현상설계에 등장했다.

당선안은 자음 ‘ㅁ’을 떠오르게 하지만 그보다는 세라믹 패널로 마감한 3층 입면에 자음과 모음, 한글 완성형 2,350자 그리고 전통 조각보의 이미지를 패턴화해 음각했다. 더불어 박물관 서쪽에 유사한 패턴을 LED와 한글 조형물로 활용한 한글 박석 마당도 제안했다. 설계자는 이런 요소를 통해 ‘한글’과 ‘전통’을 풀어내려 했다. 문제는 이 모두는 실현되지는 않았다.


한글이라는 정말 괜찮은 콘텐츠, 국립중앙박물관 전면이라는 상징적인 입지를 고려했을 때 현재 한글박물관의 모습은 안타깝다. 솔직히 표현하자면 '한글'과 상관없이 잘 지어놓은 공공건축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극단적으로 박물관 안에 전시물을 모두 치우고 주민센터로 사용한다 해서 안 될 것도 없는 건물이다.

우선 땅이 너무 아깝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입지 선정 당시부터 왈가왈부가 있었다. 하지만 한글박물관의 비중은 국립중앙박물관과 비교할 수 없고 무엇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한차례 논란을 거쳤기 때문에 그 전면에 지정된 한글박물관의 입지에 대해서는 찬반 논란이 없었다. 오히려 국립중앙박물관이 주도하는 '용산 뮤지엄 콤플렉스' 사업과 맞지 않다는 의견은 있었다. 


현상설계 안이됐든 완공된 지금의 모습이 됐든 한글박물관을 보며 드는 아쉬움은 어설픈 조형성으로 오브제(objet)이고자 했다는 점이다. 더 쉽게 얘기하면 한글박물관은 땅으로 보다 더 닿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입지가 도시공원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문화 및 전시시설이기 때문이다.

한글박물관은 서빙고로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진입하는 광장 동쪽에 배치돼 있지만 좌우대칭을 이룰 필요도, 국립중앙박물관 부속 전시시설처럼 느껴질 필요도 없었다. 스토리라인(storyline)의 연결도 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글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보다는 주변 오픈스페이스(openspace)와의 관계를 더 고려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한글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 주출입구 앞에 만들어진 열린 마당과 같이 남산과 보이지 않는 관악산을 포함한 한강 -물론 실제 보이는 건 이촌코오롱아파트 106동 뒤통수- 을 차경 하기 위한 단(段)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얘기하면 박물관의 주 출입구를 2층에 둘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물론 설계자가 이렇게 설계한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기본계획상 정해진 기능을 담아내기에는 건물을 앉힐 수 있는 대지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 설계자는 "제안된 프로그램의 면적 범위 안에서 설정된 매스에서 하늘과 소통하며 외부 접지면적을 확장시키기 위해 중정을 삽입했다"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한글박물관 입지에서 생각해야 할 점은 건물의 크기나 영역보다 박물관과 맞닿는 도시 조직인 서빙고로와 건물 간의 단절이었다. 서빙고로는 남쪽으로 경의중앙선이 지상으로 지나고 동부이촌동으로는 연결되지 않으며, 가로를 따라 활력을 줄만한 요소가 없어 휑하다. 더군다나 국립중앙박물관은 서빙고로에서 300m가량 물러나 있기 때문에 가로경관상에서도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국립중앙박물관을 대신해(?) 서빙고로에 전진 배치돼 있는 한글박물관은 남쪽 입면과 같이 가로와 만나는 부분의 처리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현재 서빙고로에서 한글박물관으로 진입하는 동선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심어진 나무로 인해 잘 인식되지 않는다. 동선의 경로도 직접적이지 않고 '┘자'로 꺾여 있다. 서빙고로에서 건물로 바로 진입하는 동선은 지하주차장으로 연결되는 경사로뿐이다. 더군다나 건물의 주출입구가 북서쪽,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나있다 보니 서빙고로와 만나는 남쪽 입면은 후면이 되어 버린다.


건물의 후면이라 해도 한글박물관의 평면이 ㅁ자이고 기능적으로 전기실, 수장고, 사무실 등은 서빙고로 반대편, 북동쪽 구석에 배치돼 있기 때문에 입면은 가로경관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서빙고로에 면한 남쪽 입면은 참으로 밋밋하다. 기본적으로 다른 재료로 마감된 입면이 수평으로 적층 되어 있지만 마감재의 컬러톤(color tone)이 회색으로 모두 비슷해서 빈 벽처럼 느껴진다. 가로에 면한 1층, 2층부 어디에서도 가로경관을 고려한 관계는 없다. 그래서 3층 구석에 '국립한글박물관'이라는 간판만 떼어내면 데이터 센터(data center)나 공장건물 같다.

그런데 현상설계 때 제안됐던 안은 지금과 달랐다. 설계자는 서빙고로에 면한 남측 입면을 '소통의 창'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1층에는 전통문양을 패턴화 한 유리 입면을 계획하여 주변 콘텍스트(context)와 소통하는 이미지"를 만들었고 "2층 펀칭 메탈(punching metal) 입면에는 한글박물관을 인지할 수 있는 로고(logo)를 삽입"했다. "3층 입면은 세라믹 패널 입면을 조각보와 함께 사선으로 절개"해서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적어도 지금처럼 밋밋한 회색의 높은 빈 벽과 그 끝에 걸린 간판으로 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기단 역할을 하는 박물관 1층에는 도서관을 포함해 회의실, 사무실 등이 배치돼 있다. 전시공간은 2~3층에 있는데 2층에는 상설전시실이, 3층에는 기획전시실, 한글놀이터, 한글배움터가 있다. 각 전시공간의 대상은 상설전시실이 한글놀이터(6~9세)보다 높다. 한글배움터는 한글이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이 한글을 쉽게 배울 수 있는 체험학습 공간이다. 딸아이는 한글놀이터를 얼마 돌아다니다 금방 시시해했다. 그리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 해설에 높은 집중도를 보였다. 나한테는 그런 모습이 낯설면서도 대견해 보였다.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내가 보고 싶어서 돌아다녔던 박물관을 이제 아이를 위해 다시 돌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에 마련된 카페에 앉아 세종대왕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아이에게 이런 생각을 이야기하자 "쩜쩜쩜"이라고 답했다. 좋다는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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