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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ur Oct 10. 2021

머뭄과 남김의 욕망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와 두바이(Dubai)

건축물을 설명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중 건축물과 닮은 ‘형태’로 설명하는 방법이 가장 즉각적이다. 설계자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서울시청 신청사를 ‘쓰나미’로, 세종 정부종합청사를 ‘용’으로 부르는 건 이 때문이다. ‘크기’도 건축물을 설명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몇 번째로 높은~’과 같은 표현이 건축물을 크기로 설명할 때 사용된다. 이 중 ‘세계에서 가장 높다’라는 타이틀은 마치 선수들이 경쟁을 통해 쟁취하려는 금메달 같다. 특히, 권력자들에게는 구미가 당기는 자격이다. 그래서 최고 높이 경쟁은 고대부터 피라미드-탑-마천루로 이어져 왔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듯하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두바이(Dubai)에 있는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다. 부르즈 할리파의 높이는 829.8m(163층)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롯데월드타워의 높이는 555.7m(123층)다. ‘부르즈(Burj)’는 ‘타워’를 의미하는 아랍어다. 그리고 ‘할리파(Khalifa)’는 두바이가 아닌 이웃도시 아부다비(Abu Dhabi)의 통치자이자 두 도시가 속한 아랍 에미리트(UAE) 대통령의 이름이다. 그럼 왜 두바이에 있는 건물에 아부다비 통치자의 이름이 붙은 걸까?


2004년 착공 당시 건물의 이름은 ‘부르즈 두바이’였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두바이는 모라토리엄(Moratorium, 채무상환유예)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칼리파 대통령이었다. 칼리파의 지원금액은 100억 달러였다.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두바이는 세계 최고층 건물명에 그의 이름을 달아주었다. 결국, 부르즈 할리파도 ‘마천루의 저주’를 피할 수 없었던 셈이다.


마천루의 저주는 도이체방크(Deutsche Bank)의 투자분석가 앤드류 로렌스(Andrew Lawrence)가 1999년에 내놓은 가설이다. 그는 100년간의 사례 분석을 통해 초고층 빌딩이 경제위기를 예고하는 신호였다고 주장했다. 마천루의 저주가 시작된 첫 번째 건물은 1930년과 1931년에 각각 준공한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Chrysler Building)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이다. 두 건물이 준공할 때 쯤 대공황(1929)이 발생했다. 이후 199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에 페트로나스 타워(Petronas Twin Tower)가 완공된 직후 아시아 경제위기가 터졌다.

주로 규모로 설명되는 부르즈 할리파를 형태로 설명할 수도 있다. 건물의 설계자는 나선 형태의 사마라 대 모스크(Great Mosque of Samarra)와 두바이 인근 사막에서 피는 히메노칼리스(Hymenocallis) 라는 꽃을 보고 건축물을 디자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누군가에게 건물을 쉽게 설명하기 위한 비유일 뿐이다. 오히려 부르즈 할리파가 현재와 같은 형태를 갖게 된 이유는 ‘바람’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높이가 높아질수록 바람의 속도는 빨라진다. 땅 위의 미풍은 100층 높이로 올라가면 태풍이 된다. 그래서 초고층 건물 설계는 풍력을 포함한 어마어마한 외력을 버티기 위한 구조, 재료, 형태 간의 고차방정식을 푸는 것과 같다. 초고층 건축물을 설계할 때에는 컴퓨터 유체 역학이라는 수리적 문제 해결 방식을 통해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simulation)을 한다. 부르즈 할리파를 설계할 때에도 건축물을 일정 비율로 줄여서 제작한 모델에 각종 센서를 부착하여 여러 차례 풍동시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위층을 아래층보다 조금씩 후퇴시킨 구간의 배열이 당초 반시계 방향에서 시계 방향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잠재적인 풍하중을 없애기 위해 건물의 전체적인 방향도 달라졌다. 부르즈 할리파의 ‘Y’자 형태 평면은 최적화된 구조의 결과이고 위층을 아래층보다 조금씩 후퇴시킨 형태는 건물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바람의 와류(渦流)를 없애기 위한 노력이다.

2010년 1월 4일 준공된 부르즈 할리파는 10년 넘게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총 공사일 1,325일). 하지만 이 지위를 위협하는 건축물이 2013년 4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Jeddah)에서 착공됐다. ‘제다 타워(Jeddah Tower)’라고 불리는 이 건축물의 계획 높이는 현재 1,000m다. ‘세계 최고층’이라는 지위를 두고 경쟁하는 부르즈 할리파와 제다 타워는 모두 중동지역 도시에 있다. 오일 머니(Oil Money)를 기반으로 한 자본력과 왕을 중심으로 한 추진력 그리고 이 둘을 합친 기획력이 초고층 건물을 가능케 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막 한가운데’라는 환경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막 바람은 모래 언덕의 모습을 수시로 바꾼다. 그래서 사막의 지형은 고정돼 있지 않다. 더군다나 텐트(tent) 외에는 구조물을 지어본 적 없는 유목민들에게 항구적인 구조물을 짓는 건 오랜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막 도시에서 초고층 건물은 오랜 시간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땅에 새기는 흔적(Landmark)이자 기준이다.

동시에 척박하고 타는 듯한 사막과 달리 아랍인들에게 하늘은 생명의 빗방울과 시원함을 가져다주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매일같이 변하는 사막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별자리를 관찰했다. 아랍세계에서 천문학과 수학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사막이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였다면 하늘은 그들에게 생명을 주는 존재였다. 그래서 아랍인들은 신이 하늘에 머문다고 생각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초고층건물은 사막과 멀어지고 하늘과 가까워지는 통로다. 우리나라 법적기준으로 초고층 건축물은 50층 이상 또는 높이 200m 이상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두바이에는 70개가 넘는 초고층 건물이 있다. 달리 말하면 하늘로 향하는 70개가 넘는 통로가 있는 셈이다.


흔히들 두바이를 ‘신기루의 도시’라고 표현한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건축가는 두바이가 모래 위에 빠르게 세워졌듯이 종국에는 다시 모래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모래 언덕만 있던 곳에 세계 최고 높이의 건물을 비롯해 실내스키장과 초대형 수족관을 갖춘 쇼핑몰을 짓고 야자수와 세계 지도를 닮은 인공섬을 건설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마치 신기루처럼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도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 또한 오랫동안 사막을 유목하며 살았던 민족이 땅에 남기는 흔적이라고 생각하면, 그 신기루는 오랜 시간 쌓아온 그들의 욕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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