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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ur Oct 12. 2021

도시를 닮은 건물

디즈니 콘서트홀(Disney Concert Hall)과 로스앤젤레스

디즈니랜드(Disneyland)는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서 시작됐고 성장했다. 그리고 한 해 2천만 명이 방문하는 디즈니랜드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며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모기업인 월트 디즈니 컴퍼니(The Walt Disney Company)도 이를 고려하여 다양한 사회사업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LA 다운타운(downtown)에 지어진 ‘디즈니 콘서트홀’이다.


디즈니 콘서트홀이 건립된 계기는 회사 설립자인 월트 디즈니(Walter E.Disney)의 미망인 릴리언 디즈니(Lillian M.Disney)의 기부다. 1987년 릴리언 디즈니는 도시와 예술에 대한 월트 디즈니의 헌신을 기리고 시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연장을 건립하기 위해 5천만 달러를 조성했다. 1992년에 착공된 건물은 사업비 마련 등의 문제로 공사가 중단됐다가 2003년 10월에야 완공됐다. 공사비는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증가했는데, 이 중 1억 1천만 달러를 디즈니 가족과 회사가 추가로 기부했다. LA카운티(county)는 땅과 지하주차장 공사비를 냈다.

건물의 설계자는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다.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Bilbao Guggenheim Museum)을 비롯해 전 세계에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프랭크 게리는 우리나라 종묘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몇 년 전 종묘를 조용히 단독 관람하고 싶다는 요청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프랭크 게리는 건물이 착공되기 1년 전인 1991년에 설계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공사가 지연되면서 설계를 바꿔야 했는데,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건물의 외장재다. 건축가는 야간조명을 통해 밤에도 건물이 빛날 수 있도록 석재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예산상의 문제로 비교적 저렴한 스테인리스 스틸(Stainless steel)로 교체했다.

디즈니 콘서트홀의 형태는 추상적이다. 그래서 건물을 보고 특정한 무언가를 떠올리기 힘들다. 건물의 윤곽을 이루는 곡선은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k)의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을 연상시킨다. 혹자는 건축가가 보트 타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반짝이는 쾌속선을 닮았다고 했다. 음악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라고 생각한 프랭크 게리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모습을 보고 초기 스케치를 했다고 한다. 건물의 용도가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로저 와그너 합창단(The Roger Wagner Chorale)이 전용으로 사용하는 시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후자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건물을 보고 무엇을 떠올리든 디즈니 콘서트홀은 확실히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독특한 모습을 띄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시설은 ‘문화의 전당(殿堂)’이라는 표현과 어울릴 수 있도록 크고 화려하며 장엄하게 지어진다. 구체적으로 그리스 신전이나 로마 공회당처럼 육중한 기둥이 건물 앞에 늘어서 있고 거대한 지붕이 건물 위에 올려져 있다. 서울 광화문 광장 옆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이나 서초 예술의전당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럼, 프랭크 게리가 기존과 달리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디즈니 콘서트홀을 설계한 이유는 무엇일까? 디즈니 콘서트홀이 있는 LA는 전 세계에서 이민 온 다양한 민족이 각자의 언어와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도시다. LA 한인타운에만 가봐도 미국이라기보다는 이태원에 온 것 같다. 도시의 주류(主流) 문화가 없기 때문에 LA를 ‘전통이 없는 도시’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기존 문화의 대안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LA만 한 도시도 없었다. LA가 영화산업의 중심이 되고 전 세계 예술가들의 정착지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도시 내 다양한 문화는 서로 융합하고 때로는 충돌하면서 예측할 수 없는 조합을 만들어 낸다. 서로 다른 것들을 두려워하는 ‘이질공포증’과 서로 끌리며 떨어지지 않으려는 ‘이질애착증’이 공존하는 도시가 LA다.

디즈니 콘서트홀도 같은 배경을 공유하고 있다. 월트 디즈니는 시카고 출신이었고 그의 아내 릴리언 디즈니는 아이다호에서 태어났다. 건물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는 캐나다에서 태어난 유대인이고 건물의 음향설계를 담당한 미노루 나가타(Minoru Nagata)는 일본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시설인 디즈니 콘서트홀이 특정 문화를 상징하는 형태로 지어졌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LA에 거주하는 특정 문화에 반감을 지닌 사람들에게 이 건물은 자신이 사는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시설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디즈니 콘서트홀이 착공되던 1992년에는 흑인을 집단 폭행한 백인 경찰관들이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나면서 발생한 ‘LA폭동’이 있었다. 당시 폭동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흑인거주지와 백인거주지 사이에 있는 코리아타운이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착공된 디즈니 콘서트홀은 LA시민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만한, 누구나 좋아하는 디즈니랜드 같아야 했다. 어떤 문화도 떠오르게 하지 않는, 어떤 민족도 대변하지 않는, 지금까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건축물. 건축가 입장에서는 정말 풀기 어려운 과제였다.


다행히 프랭크 게리는 "낡은 아이디어(Idea)를 재탕해서는 안 됩니다.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배울 수는 있지만 과거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라고 생각하는 건축가였다. 그는 무엇에도 옭매일 필요가 없는 LA를 영감의 원천으로 여겼다. 그리고 느슨하고 자유로운 접근법을 모색했는데, 그 시작은 자신이 사는 LA의 다양한, 심지어 뒤죽박죽 같은 모습을 무시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영화의 도시답게 LA는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됐다. 그 중 2016년 개봉한 ‘라라랜드(La La Land)’는 도시의 속성을 가장 아름답게 묘사한 영화다. 재즈 피아니스트인 남자 주인공과 배우 지망생인 여자 주인공에게 LA는 자신의 꿈을 만들어가는 배경이다. 두 주인공이 만나는 영화 초반에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에게 LA를 이렇게 설명했다.

“They just worship everything and they value nothing.”

(LA는 뭐든 숭배하지만 소중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의 대사를 들으며 이보다 LA를 잘 설명한 문구는 없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이보다 디즈니 콘서트홀의 추상적인 형태를 정확하게 묘사한 표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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