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렌치아나 도서관(Laurentian Library)과 피렌체
메디치(Medici) 가문이 배출한 두 번째 교황 클레멘트 7세(Clement VII)는 자신과 가문이 소유한 책을 피렌체 지식인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때까지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곳이지 교류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교황은 자신이 생각한 새로운 개념의 도서관을 설계해줄 사람을 떠올려 봤다. 하지만 결국 한 사람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도서관의 위치는 메디치 가문의 예배당인 산 로렌초 성당(Basilica di San Lorenzo)의 안뜰 2층이었다. 미켈란젤로에게 산 로렌초 성당은 특별한 곳이었다. 5년 전 메디치 가문이 배출한 첫 번째 교황인 레오 10세(Leo X)가 성당의 정면 설계를 그에게 의뢰했었다. 미켈란젤로는 3년간 이 일에 전념했지만 재정난으로 그의 디자인은 나무로 만든 모형에서 끝났다. 아직도 성당 정면은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다.
도서관 공사는 1525년에 시작됐다. 하지만 2년 뒤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서 추방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의 원인은 교황 클레멘트 7세를 포함한 코냑동맹(League of Cognac)과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Charles V) 간의 전쟁 중 발생한 ‘로마 약탈’이었다. 로마를 포위한 신성로마제국 군인 중 일부가 지휘관이 전사한 사이 로마 시내를 잔인하게 약탈했는데, 이로 인해 로마 시민 12,000명이 사망했다. 교황도 7개월간 산탄젤로성(Castel Sant’Angelo)에 피신해 있어야 했다.
‘로마 약탈’은 이탈리아 반도 내 교황의 영향력을 급격하게 떨어뜨리는 사건이었다. 특히, 피렌체에서는 시민들이 메디치 가문을 내쫓고 공화정을 복원시켰다. 이 과정에서 미켈란젤로는 방위 위원으로 임명돼 황제군의 포위 공격을 버틸 수 있는 성을 쌓아야 했다. 메디치 가문의 일을 하고 있었던 미켈란젤로 입장에서는 메디치 가문을 내쫓은 피렌체 공화국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피렌체 공화국은 황제군과 메디치 가문의 연합 공격을 끝내 버티지 못했다. 메디치 가문은 다시 피렌체를 장악했는데, 이때 초대 공작으로 임명된 인물이 ‘메디치가의 폭군’으로 불렸던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Alessandro de’ Medici)였다. 교황 클레멘트 7세와는 사촌 형제의 손자 사이였다. 권력의 주인이 바뀌자 숙청이 시작됐다. 미켈란젤로도 안심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메디치 가문의 감시를 피해 숨은 곳은 메디치 가문의 예배당인 산 로렌초 성당 지하였다.
1534년 미켈란젤로가 피렌체를 떠나 로마에 도착했을 때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은 열람실 벽체만 완성된 상태였다. 하지만 트리볼로(Tribolo), 바사리(Vasari), 암만나티(Ammannati)가 미켈란젤로가 남긴 도면과 서신을 통해 남은 작업을 진행했다. 도서관은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나고 7년이 지난 1571년에 미완성 상태에서 개방됐다.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은 크게 열람실과 그 앞에 있는 전실(前室; Vestibule)로 나뉜다. 이 중 많은 사람들이 미켈란젤로의 수작(秀作)이라 평가하는 부분은 전실이다. 높이가 높은 전실 한가운데에 열람실로 연결되는 계단이 있다. 전실 크기를 감안하면 계단은 지나치게 크다. 그래서 마치 조각품 같다. 계단은 세 갈래로 나뉘어 올라가다 중간에 하나로 합쳐지는데, 이 중 가운데 계단 바닥이 상당히 조형적이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작업을 이어받은 바사리에게 계단의 원래 설계를 기억하지만 꿈속에서 기억하는 기분이라는 편지를 보냈었다고 한다.
전실에서는 계단 외에도 벽 안쪽으로 파묻은 벽기둥(pilaster), 모서리에서 충돌하고 있는 양머리 형태의 장식, 몸체가 없는 기둥머리(capital) 등을 볼 수 있는데, 모두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특이한 디자인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 관심을 끈 건 전실을 둘러싼 벽과 벽감(alcove)이었다.
벽감은 장식을 위해 벽 안쪽을 오목하게 파서 조각품 등을 세워 놓는 공간이다. 그런데 전실의 벽과 벽감에는 어떤 그림이나 조각품도 놓여 있지 않다. 그렇다고 창문이 설치돼 있지도 않다. 왜 벽과 벽감은 모두 빈 상태일까? 궁금증을 안고 열람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열람실 안에 있는 벽감도 창이 설치돼 있는 곳을 제외하면 모두 비어 있다. 도대체 미켈란젤로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한참을 생각하다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에 적혀 있는 ‘semper’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영어에도 있는 이 단어는 ‘항상’, ‘변함없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도대체 무엇을 ‘항상’, ‘변함없이’, ‘우선’하라는 걸까?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열람실 바닥, 천장 그리고 스테인드 글라스에 있는 그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기괴한 형상들이 그려져 있다. 뿔이 난 말의 머리에 사자 갈기를 달고 허리 아래는 물고기 몸을 닮은 동물도 있고 털이 난 긴 귀를 가진 악마 같은 얼굴도 있다. 왜 이런 기괴한 형성들과 ‘semper’라는 단어를 함께 놓은 걸까? 그런데 그 기괴한 형상들은 익숙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흔히 새로운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재분류하고 재조합하면서 나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의 이 기괴한 형상들은 기존의 것들을 재조합해서 만든 새로운 것이다. 그 모습이 새롭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기괴해 보이는 것뿐이다.
도서관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한 군데 모아놓은 곳이다. 만약 도서관이 없다면 관련된 책을 읽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당연히 멀리 떨어져 있는 책이 담고 있는 정보 간의 조합도 그만큼 어려워진다. 도서관을 방문한 지식인은 자신이 알고자 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 책을 뒤적이다 그 옆에 꽂힌 다른 분야의 책을 쉽게 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때로는 다른 분야의 책을 똑같이 읽었다 하더라도 읽은 시간에 따라 각기 다른 지식이 탄생할 수도 있다. 결국 도서관은 책이 담고 있는 기존의 지식과 정보가 수만 가지의 방식으로 조합되어 셀 수 없이 많은 새로움을 탄생시키는 공간이다. 미켈란젤로와 피렌체의 천재들이 기괴한 형상과 ‘semper’라는 단어를 통해 도서관을 방문한 지식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었다.
“이곳에서 당신만의 새로움을 찾아라!”
미켈란젤로가 벽과 벽감을 비워둔 이유는 도서관을 방문한 지식인이 자신이 만든 새로운 이미지를 채우라는 요청이다. 당연히 그 새로운 이미지는 열람실 바닥, 천장 그리고 스테인드 글라스에 있는 형상들처럼 기괴하고 새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