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어느 사서의 기록
공공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프로그램 기획만 6년쯤 한 것 같다. 멋모르고 시작했을 때는 전임자들이 써놓은 계획서를 보면서 따라 하기 급급했는데, 이제는 나만의 기획도 해보고 제법 추진력도 생긴 것 같다. 다른 기관과 경쟁하는 공모사업에도 선정되어 보고, 표창도 받은 걸 보면 운도 운이지만, 나의 사업 기획과 운영 능력이 나름 경쟁력 있는 게 아닐까 다소 오만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 3년 정도는 주로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아무래도 누구나 이용가능한 공공도서관이라곤 하지만, 그 '공공'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장애인 쪽에는 박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모두 이용가능하다.'는 건 어쨌든 특별하지 않다는 의미기도 하다. 모두를 포용하긴 하지만, 모두에게 특별할 정도로 공공도서관의 여력이 넉넉하진 않기에 효율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다수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공공'이기에 보편 평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도서관 입장에선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 장애인 사업이다.
도서관에서는 장애인을 '지식정보취약계층' 중 하나로 분류한다. 도서관법 시행령 제2조에서는
① 장애인
② 기초생활수급권자
③ 농어촌 주민
④ 다문화가족
⑤ 북한이탈주민
⑥ 65세 이상의 사람
으로 '지식정보취약계층'으로 정의한다. 서울도서관에서는 도서관법보다 다소 부드럽게 표현하고 있는데,
① 신체적 취약계층: 장애, 노령화 등 신체적 약화
② 문화적 취약계층: 외국인, 다문화가정 등 언어, 문화 다양성
③ 경제적 취약계층: 소득 격차, 실업·실직
④ 사회적 취약계층: 한부모, 사회적 편견
위와 같이 4종류로 취약계층을 정의하고 있다. 반드시는 아니지만 위 대상이 '지식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낮을 확률이 매우 높다.'라고 보고 도서관은 기회적 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새로 발령받아 온 도서관에서 지식정보취약계층 사업을 맡게 되었다.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작은 규모의 공공도서관은 앞서 정의한 모든 지식정보취약계층을 지원하긴 어렵다. 그것이 장서가 됐든, 프로그램이 됐든, 시설이 됐든 지자체 단위로 움직이면 모를까, 단일 도서관에선 아무래도 규모면에서 분명히 한계가 있다.
우리 지역에 인구 구성을 살펴봐도 장애인, 기초생활수급권자, 농어촌 주민, 다문화가족, 북한이탈주민은 소수이기 때문에 그들이 몇 명이나 도서관에 와줄까?(아니 존재할까?) 이것도 현실적으로 고민이 되며, 그래서 그나마 만만한 게(?) 65세 이상의 사람이니까 고령자 프로그램이나 큰글자책과 같은 장서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요즘은 65세를 고령이라고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긴 하다.)
배경적인 상황뿐 아니라 담당자인 나도 문제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내가 장애인을 위한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더군다나 시각, 청각, 지적 장애 등 장애 종류만 해도 15종(보건복지부 고시 제2019-117호)이나 되며, 특징이 다르고 준비할 것이 천차만별이다. 멋모를 때는 겁도 없이 이게 좋겠지 하면서 할 수 있는데 이젠 아주 조금 아니까 이래도 되는 걸까? 스스로 의심이 들기도 한다. 지식정보취약계층에서 장애인을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부류는 비장애인이므로 모두를 지원할 수 없는 상황에 다른 취약계층으로 내 관심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얼마 전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연수원에서 진행하는 도서관 장애인 서비스 교육을 들었다. 교수님들의 이론적 지식과 배경, 실무자들이 설명하는 실제 사례들을 보면서 우리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교육을 듣는 중에도 사실 같은 예산이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보통 장애인 사업은 비장애인 사업에 비해 예산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다 어떤 수업에서 고민을 털어놓을 기회가 있었고, 한정된 예산에서 다수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장애인 사업에 작은 규모의 도서관이 나서는 것이 현실적으로 맞을까 고민이 된다 말할 기회가 있었다. 내 고민을 들은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그럼에도 도서관에서 해주세요."였다. 여기가 아니면 해주는 데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도서관은 다양한 문화 향유 기관 중 하나로, 또는 교육 기관의 하나로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많은 기회들 중에 하나일 뿐이며, 그 기회들은 다수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 다수는 선택하며 가장 합리적인 기회를 잡지만, 소수는 선택에 여지가 없다는 것이 도서관에서 장애인 사업을 해야 할 이유라고 생각했다. 납득이 가는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에게는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사업을 할지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교육 내용 중 장애의 분포에 대한 내용이 있었는데, 지체장애인이 43.7%로 가장 많았고, 청각장애인이 16.4%로 2순위였다.(한국장애인개발원 2024 장애통계연보 p.23) 가장 많은 대상은 그만큼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다음 순위인 청각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로 했다. 그리고 청각장애인이라는 뭔가 막연히 낯선 대상이 도전하고자 하는 의욕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기록하려 한다. 필연적으로 청각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며, 어쩌면 비장애인에게 청각장애를 알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아니 사실 둘 다 모르겠고, 나의 시행착오를 기록하게 될 공간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