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이 있어야 한다 아임니까? 명분이
전 편에서 쓴 것처럼 청각장애인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기획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속성'이다. 영향을 미치려면 일회성보다는 다회성이 더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고, 그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효과를 확인하기 좋은 방법은 직접 묻는 것이다. 처음부터 자기 속마음을 얘기하기 어렵기 때문에 도서관과 라포(rapport) 형성이 중요하다. 유대감을 형성하는데 많이 만나는 것 외에 나는 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 프로그램은 이용자와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므로 장기간 사업을 지속할수록 좋은 사업이 될 확률이 높다.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담당자 수준에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인적), 부담 없이(물적)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이다. 도서관은 활용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이 제한적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도서관의 예산과 인력이 충분하다는 곳을 보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후임자에게 잘 인계해 주고 가더라도, 나와 역량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내가 아닌 누가와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사업이 지속될 수 있다.(더 잘해준다면 참 감사한 일이다.) 또한 상황이 변화하여 많은 업무를 감당해야 하는 상태가 된다면,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부분부터 정리가 될지도 모른다. 장애인 사업은 필요성은 높지만 아무래도 많이 부담스러운 쪽에 속한다. 업무가 복잡하지 않아야 지속할 수 있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는 세금으로 운영된다. 도서관 예산은 사회복지 차원에서 할당되며, 복지 예산은 아마도 영원히 넉넉할 일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낭비할 수 있는 예산도 없지만, 그나마 있는 예산으로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범위를 정하고, 이것이 장기간 봤을 때 무리한 수준이 아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처음 시도하는 측면에서도 부담스러운 예산은 삽도 못 뜰 가능성이 있다. 가벼워야 시작이 수월하다.
지속성을 염두에 두고 쉽고, 부담 없는 예산으로 사업을 편성하고자 할수록 자연스럽게 왜 해야 하는지 '목적'이 뚜렷한 사업만 남게 된다. 나는 이것을 '명분'이라 생각한다. 장애인 사업은 도서관법 제6조와 7조에 의해서 지식정보격차 해소 지원 역할을 해야 하는 도서관 입장에선 명분이 확실한 사업이다.
청각장애인으로 대상을 구체화해서 보더라도 명분은 충분해 보인다. 2014년부터 장애인 독서진흥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사업인 국립장애인도서관의 <장애인 독서문화프로그램 지원사업>에서 2024년 총 70개 기관을 지원했는데, 장애유형별로 분류한 결과는 아래와 같다.
1. 발달장애: 37 개관, 52.9%
2. 시각장애: 13 개관, 18.6%
3. 지체장애: 13 개관, 18.6%
4. 청각장애: 7 개관, 10%
청각장애를 대상으로 하는 기관 수가 가장 적다는 것은 그만큼 시도가 어렵다는 말도 되지만, 남들이 많이 하지 않은 만큼 경쟁력이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지원사업을 따낼 확률도 그만큼 올라가기도 할 것이고, 자체 재원으로 수행하더라도 같은 지역 중복되는 다른 도서관 사업이 없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명분이라는 것은 사업 시작하는 근거이기도 하지만, 부족한 재화를 두고 사업담당자로서 기관장을 설득하는 수단이기도 하며, 기관장 또한 예산 심의과정에서 의원들을 설득할 근거이기도 하다. 명분이 구체적이고 명확할수록 더 오래 지속되고, 탄탄해진다.
결국은 목적이 뚜렷하고, 실행 가능성이 높으며, 예산이 합리적인 프로그램을 구상해야 한다는 소리다. 예산이 넉넉하다면 현시점에서 가장 효과적인고 매력적인 아이템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하므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을 쉬운 방법으로 저렴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다음엔 청각장애 관련기관과 프로그램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