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으로 보일까 봐 기분 좋음을 숨겼다.
나는 PTSD를 앓고 있다.
뚜렷하게 우울증이라든가 조증이라든가 하는 병명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내 감정이 어렵다.
슬퍼도 무섭고 기분이 좋아도 무섭다.
혹여
우울이 문 앞에서 두드리고 있는 것일 까봐
조증이 창문가에서 싱긋 웃고 있는 것일 까봐
부담스러움에 눈앞의 것을 마주하지 못하다가
이따금씩 어디선가 용기가 나서
스스로 [아니야] 하고, 이야기할 때는
내가 못하던 것을 해냈다는 생각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서 마치 내가 7살이었을 때처럼
논두렁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던 때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이 조증이면 어떻게 하지?
내가 꿈이나 현실에서 나를 괴롭게 하던 것을 쫓아내고
맞서 싸우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로 인해 너무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것은 조증이 아닐까.
그럴 때마다 나는 또 비를 맞는다.
그러다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분이 좋으면 안 되는가?
왜 나는 또 내가 좋은 것을 허락하지 못하는 가?
스스로 비 오는 한가운데에 세워 놓고 춥게 두는 가?
그동안 연약하여 싸우지 못했던 마음이 단단해져서
내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때 가 되었으면
같이 축하해 줘도 되지 않는 걸까?
[Go /No-go]의 틀 안에 갇힌 내가
눈같이 내리는 기분 좋음에서 한참 놀아도 괜찮지 않을까?
기분 좋음을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