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endtic Hannahism Jan 04. 2024

삶을 견디다에서 삶을 사는 것으로

파괴된 알에서 나온 후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수십 년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세계였다.

그 세계는 나에게 그것만이 진리고 그것 외에는 들을 것이 없으며, 거스르면 저주뿐이라 가르쳤다.

데미안에서 말하듯 그곳은 내가 자라던 알이었고 

그곳에서 썩어 죽지 않고 태어나려고 하던 나는 알을, 세계를 파괴하였다. 


(이런 글을 쓰면 뭘 네가 세계를 파괴했냐고, 네가 뭘 대단한 걸 했느냐고. 

그렇게 거창하고 낯간지러운 글을 쓰느냐고 하겠지만.

니체가 진창에 빠진 말의 목을 잡고 울어댄 것을 보고는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했다.)


깨고 나온 세계에서는 나는 덮을 모포하나 없이 서성였다.

괴롭고 기댈 곳 없어 널 부러져 있을 때면 깨진 알 사이로 기어 나오는 냄새나고 앙상한 갈고리가

너는 갈 곳이 없다 하고 내 등에 구멍을 뚫어 끌고 들어가려 했다.


그래도 나는 다시 가지 않았다.

내가 버틸 수 없다면 도움을 받아서라도 버텼고

울어서라도 버티고 기어서라도 버텨서 이제 8년이 되었다.



그동안 그곳에서 귀에 넣어준 저주는 하나도 나에게 이루어진 것이 없었다. 

나에게 새로운 일들이 생기고 좋은 분들을 알게 되고 

살 만한 힘이 생기고 무엇보다 죽을 것 같은 생각이 사라졌다.

내가 왜 죽을 거 같은 생각에 시달렸는가.

떠나면 죽는다고 했으니까. 내 아버지의 죽음이 확증이 되어 떠나면 죽는 다고 나에게 저주했으니까.


그런데 나는 죽지 않고 오히려 살아 이제 열심히 살아 삶을 영위할 때가 되었다 

하고 내가 나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그들은 꿈에 나오고 이따금씩 연락도 온다.

이전에는 내가 말을 잘못하면 혹시 불이익이 오지 않을 까.

나쁘게 되지 않을 까. 걱정하며 불안했다.


지금은 그들에게 어떠한 말을 하는 데에도 주저함이나 불안함이 없다.

있더라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그 알속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의 세계가 깨지면 그 이후를 감당할 수 있겠냐고.


매거진의 이전글 비 맞은 우울, 눈이 된 조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