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리의 레오를 들으면서
랑시에르가 말하는 우리의 소리가 말이 되기를 원하는 간절함을 떠올린다.
名前は レオ 名前呼んでよ
君がつけてくれた名前だから
寂しいけれど 悲しいけれど
傍に居ると決めた大事な人
이름은 레오 이름을 불러줘.
네가 붙여준 이름이니까
외롭지만 슬프지만
옆에 있다고 결정한 소중한 사람
きっとお別れだね
最後にさ 会えたから
ねぇ幸せだよ
분명 이별이구나
마침내 만났기에
행복해
-유우리 [레오] 중-
어째서 이 노래가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유우리의 레오라는 노래가 왜 그런지 모르게 나에게 강아지의 일생이, 강아지의 마음이 공감되게 해 준다. 강아지가 주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그런 강아지가 안쓰러워서 괜히 눈시울이 붉어진다. 오늘 계속 이 노래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듣고 있다.
강아지는 짖는다. 우리는 듣지만 그것이 우리와 같은 말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저 고통이나 즐거움을 표현하는 소리정도로 취급한다. 그래서 이 노래가 전달하는 가사가 나도 너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노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나를 데려와 줘서 고맙다는 강아지.
내 이름을 불러달라는 강아지.
나를 봐달라는 강아지.
더불어 랑시에르의 실행에 옮긴 평등에 대하여,
곧 이제까지 자신들의 말이 백색소음에 불과했던 것을 투쟁으로 정의와 불의를 논할 똑같은 말임을 증명해 보인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회 속에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말로 여기지 않는 같은 인간의 말들이 있다.
혹은 우리의 요구들이 누구에게는 이름 없는 존재들이 뱉는 소음일 터이다.
그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요구는 애초에 들어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이 사회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해야 한다. 이것이 무시해야 할 소음이 아니라 당신들과 동등한 말이라고.
평등은 추구해야 할 어떠한 목표나 이데아가 아니라 출발해야 할 전제이자 입증해야 할 무엇이다.
'말의 평등'이 출발점인 것일지도 모른다
조제프 자코토는 모든 지능이 동등하다 하는 발언으로 끝없는 도전을 받았는데
이것은 인간의 두뇌의 성능이 동등하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종류의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뜻이라고 한다.
나는 아직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말하고 싶은 그 마음은 알 것 같다.
저마다 행동으로 입증하려고 노력하길 바라는 그런 가설이었을까..
민주주의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도 발언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실제로 그런 발언을 할 수 있음을 애씀으로 입증하여 실행에 옮긴 평등으로 보인 것이 아닐까.. 싶다
랑시에르가 믿는 민주주의가 부족하고 모순된 부분이 있어 보여도 믿고 지키고 싶은 까닭은 특별한 자질도 없고 타인에게 권력을 행사할 그 어떤 자격도 없는 다수가 자신들의 목소릴 낼 수 있음을 인지하고 실행하여 입증하는 실천하는 아름다운 과정이기 때문이 아닐까..
노래 듣다가 배운 것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