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비밀의 화원>
| 시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뮤지컬
| 연극 놀이를 통해 치유받는 네 명의 아이들
꽃 내음새는 추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생명력이 격동하는 봄이 왔음을 알려주며,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기도 하고,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꽃 축제나 식물원, 화원을 찾는다.
본 작품의 제목인 ‘비밀의 화원’은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까? 그리고 비밀의 화원은 등장인물과 관객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주고 있을까?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선 듯, 곳곳이 꽃으로 꾸며져 있어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뮤지컬 <비밀의 화원>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소설 <비밀의 화원>은 인도에서 부모에게 방치되었던 소녀 메리 레녹스가 황무지에서 친구들과 비밀의 화원을 가꾸면서 마음의 위로를 찾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영국의 그레이트 메이담에 자리 잡은 후 ‘메이담 홀’이라는 정원에서 치유 받은 경험을 본인의 소설이 고스란히 녹여냈다. 1911년 출간 이후 한 번도 절판되지 않았고, 제목만으로 많은 이들에게 숨 쉴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뮤지컬 <비밀의 화원>에서는 원작의 이야기를 극중극으로 구성하여, 보육원에 있는 네 명의 아이들이 이 내용을 가지고 연극 놀이를 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극중극으로 진행되는 만큼, 모든 인물은 1인 2역 연기를 맡지만, 사실은 현재에서 그들이 결핍되어 있는 것과 유사한 상황에 처한 인물, 그리고 그 인물이 자신의 결핍을 깨뜨리고 채워나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의 인물이 치유받는다.
극에는 에이미/메리 레녹스, 찰리/콜린 크레이븐, 비글/디콘 소어비, 데보라/마사 소어비가 등장한다. 에이미, 찰리, 비글, 데보라는 보육원에서 살고 있는 네 명의 아이들이다. 이들은 마지막 오프닝데이(후원자를 얻을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한다. 이 행사가 끝나면 모든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사회로 나가 각자 살아가게 된다. 가족과 다름없었던 아이들은 슬픈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어렸을 적부터 좋아하던 동화책을 읽으며 연극을 하기 시작한다.
네 명의 아이들은 동화 속 내용을 연기하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고, 사회로 나갈 힘을 얻는다는 점에서 본 작품이 사이코드라마(심리극, psychodrama) 형식을 차용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 작품의 창작진으로는 작가 김솔지, 연출 이기쁨이 참여하였는데 뮤지컬 <유진과 유진>과 동일한 창작진이며, 두 작품 모두 사이코드라마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뮤지컬 <비밀의 화원>과 <유진과 유진>이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전반적인 분위기가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연극을 통해 위로함’이 극의 주요 골자인 만큼 음악 또한 이에 맞게 편승한다. 음악은 따뜻하면서도 아이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드러낸다. 이에 대부분 장조로 구성되어 있으나 우울감에 아이들이 침식될 때는 단조로 바뀐다. 피아노, 기타, 첼로, 바이올린 외에도 여러 악기를 사용하여 풍부한 선율을 완성하며 동요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다만 반복되는 박자와 멜로디로 모든 넘버가 구성되어 있어서, 조금 다른 박자감이나 멜로디로 조금씩 차별점을 줬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공동 작곡에 참여한 이성준 작곡/음악감독 특유의 서정적이고 포근한 멜로디는 분명 이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고, 관객의 감정을 건드렸다.
극중극이 진행될 때는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함과 동시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하여 보라색 조명이 사용되며, 이들이 연극 놀이를 통해서 치유 받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하여 따뜻한 노란색, 연두색 조명을 주로 사용한다. 그러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에는 어두운 보라색, 남색 같은 조명이 사용되어 그들의 감정과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더불어 조명의 모양을 꽃 모양으로 표현하는 등 다채롭게 사용한다. 무대 위에서 영상을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무대 위 공간 이동의 한계를 보완함과 동시에 동화적인 분위기를 훨씬 더 극대화하며, 이는 비밀의 화원이 열리는 순간 극대화된다.
비밀의 화원이 열리는 순간은, 실제로 꽃을 장식함으로써 탄성을 자아냈다. 특히 이때 꽃향기가 극장 안에 퍼져나가며 시각적 효과뿐만 아니라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넘어 후각적 공감을 선사함으로써 관객과 극 간의 거리감을 극도로 가깝게 만든다. 울새 소리, 숲 속의 소리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하며 우드톤, 꽃으로 꾸며진 무대는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연극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은 마침내 그들에게 강요되었던 생각에서 벗어난다. “왜 도움받지 않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 보육원의 원장은 아이들에게 학교에 가고 싶거나 어떤 일을 하려면 후원자에게 잘 보여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그들에게 항상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누군가의 마음에 들고, 착한 아이로 보이기 위해서 생긋생긋 웃었다.
하지만, 6살부터 18살까지 24번에 걸쳐 온 오프닝데이에서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실망과 희망을 품어도 달라지지 않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비밀 연극 속 비밀의 화원은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꽃씨를 심고 꽃이 자라고, 봄이 되면 수만 개의 꽃이 만발하는 것처럼 말이다. 구체적으로 연극 속에서 자신이 걷지 못한다는 것을 의사와 주변 사람으로부터 세뇌당한 상태인 만큼 자신이 걸을 수 없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는 걸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할 수 없게 되지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순간 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마침내 말한다. “아무도 모르는 우리의 한계. 씨앗을 심어보자. 어떤 꽃이 어떻게 필지 모르는 것처럼” 그들은 보육원장이 만들어놓은 틀에서 벗어나, 더 이상 선택받길 기다리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떠밀려서 보육원을 떠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희망찬 표정으로 보육원을 떠난다. 제각각의 꽃이 다른 것처럼, 각자 다른 빛을 가지고 말이다. 이것이 그들의 의상으로 가장 잘 드러난다. 아이들은 원래 보육원에서 주는 공동 의상인 회색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떠나는 순간, 에이미는 빨간색, 찰리는 파란색, 비글은 초록색, 데보라는 베이지색 의상 또는 소품을 걸친다. 무채색이었던 아이들이 색을 입은 것이다.
‘비밀의 화원’은 결국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우리의 아름다운 가능성이고 다채롭고 아름다운 색이었다. 지금의 내가 아무리 무채색으로 둘러싸인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우리 안에는 항상 생동하는 아름다움이 내재하고 있으며, 이것은 ‘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하여 현실로 나오게 된다. N포 세대라 일컬어지는 작금의 시대 속, 뮤지컬 <비밀의 화원>은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