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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나 May 22. 2023

[뮤지컬] '살아 내고자' 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

뮤지컬 <실비아, 살다>

                                         

                                   “너의 글이 누군가에게 목도리가 되어줄 거야” 


실비아 플라스는 섬뜩하고도 잔혹한 스타일의 시를 통해 여성으로서 가지는 격정을 솔직한 글쓰기로 풀어낸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8살 때 겪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9살 때 첫 자살 시도를 하고, 21살에 또 한 번, 그리고 31살에 마지막 자살을 통해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죽음 후에야 예술성을 제대로 평가받아 사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유일한 작가가 되었다. 


뮤지컬 <실비아, 살다>는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여성들이 죽음이 아닌 삶을 찾아가는 바람을 말하고자 빅토리아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실비아 플라스가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하게 하는 팩션(Faction)의 이야기로 구성했다.

극이 시작하기 전 배우 두 명이 나와 아이폰 사용자에게 극 중 실비아라는 이름에 시리가 반응하기 때문에 꼭 핸드폰 전원을 꺼달라고 말한 뒤 ‘시리(Siri)야’를 몇 번 반복해서 외친다. 그러고 나서 오른쪽 벽에 걸려있는 벽시계를 12시로 맞춘 뒤 극이 시작된다. 이 외에도 루이스 보셔 역과 알바레즈 역을 맡은 두 배우는 멀티 역을 소화하면서 소품을 옮기고 배치하는 등의 여러 역할을 자연스럽게 해나가며 극에 동화된다.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조명이 켜지자 두 명의 여인이 기차를 타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역에 도달하기 전까지 절대 내릴 수 없다는 등의 이상한 말들이 오가며, 한 여인은 기차에서 내리고자 비상 정차를 한다. 그녀의 이름, 바로 실비아 플라스이다. 


1956년 영국 런던으로 배경이 바뀌며 시계는 3시를 가리킨다. 명문대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한 실비아는 유명한 시인이 되어 이름을 떨치겠다는 거친 포부를 갖고 있다. 이때 서정적이고 밝은 멜로디가 나오며 실비아, 빅토리아의 만남이 이루어지며 그들은 친구가 된다. 그들은 남성 비평가, 남성 신화를 비판하며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테드와 실비아는 사랑에 빠지고 둘은 곧 왈츠를 추기 시작하는데, 이때 노란색 조명이 따뜻하게 그들을 감싸며 현악기가 강조되어 사랑에 빠진 남녀의 마음을 잘 표현한다. 


테드와 함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던 실비아는 자신의 행복했던 유년 시절을 생각하게 되고, 배경은 1941년 미국으로 전환되며 시계는 3시에서 1시로, 뒤로 움직인다. 어린 시절 왜 그녀가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하게 되었는지 이유가 나온다. 그리고 이후 그녀가 왜 10년마다 자살을 시도해야 했었는지가 설명된다. 그녀는 부당하고 암울했던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서 의식처럼 자살 시도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항상 다시 돌아왔으며 이는 철저한 계산과 대비 덕분이었다.

실비아는 여자라는 선천적인 성 때문에 자신이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음에도 시인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시인 남편의 유명세에 가려져 한낱 가정주부로 전락해 버림과 동시에 취미로 시를 쓰는 여인으로 인식되는 현실을 견디지 못한다. 심지어 남편은 시만 쓸 동안, 그녀는 집안일, 강의, 남편 글 타이핑으로 인해 그녀 자신이 시 쓸 시간조차 갖지 못한다. 그녀는 말한다. “나의 실패가, 테도의 성공이야.” 


전반적인 멜로디는 피아노의 선율로 이루어져 있는데, 실비아가 자신의 시를 읽거나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를 낼 때 ‘쿵짝짝 쿵짝’의 멜로디가 등장한다. 쿵쿵거리는 발걸음 소리는 실비아가 느끼는 사회적 두려움을 표현함과 동시에 사회 편견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실비아의 힘찬 발걸음을 의미한다. 또한 마리오네트와 같이 무언가에 조종당하는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보라, 녹색, 파랑 등의 어두운 색깔의 조명들이 표현되며 비참하면서도 씁쓸하고, 우울감으로 가득 찬 실비아의 모습과 심정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극은 크게 수미상관 구조로 되어 있다. 프롤로그 기차 장면으로 시작해 에필로그에서도 기차 장면으로 끝을 맺고 있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초입부에 던진 질문들과 상황에 대한 물음표에 대한 답을 극이 진행됨에 따라 하나씩 관객에게 말해준다. 또한 극의 흐름 또한 관객이 예상할 수 없는 구조로 흘러가 극에 대한 집중력을 더욱 고조시킨다. 


무대 배경은 회갈색으로 되어있으며, 주요 인물인 실비아, 테드를 제외하고 무대 위에 등장하는 인물의 옷은 모두 회갈색과 비슷한 색이다. 실비아의 또 다른 자아인 빅토리아 또한 살아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회갈색과 비슷한 베이지색으로만 된 옷을 입고 있다. 루이스 보셔와 알바레즈 외를 맡은 두 남녀 배우 또한, 배역으로서 무대 위에 존재할 때만 색깔 있는 옷을 겹쳐 있고, 그 외로 돌아갈 때는 다시 색을 벗는다. 실비아는 다홍색 블라우스와 초록색 치마를 입어 자신의 존재감을 색으로 강렬하게 전달한다. 테드는 파란색 셔츠, 빨간색 멜빵, 회갈색 바지를 입고 등장한다. 하지만, 실비아가 테드의 외도를 알고 점차 생기를 잃어가는 순간 그는 베이지색 코트를 입음으로써 자신의 색깔을 죽인다. 더불어, 무대 구조물을 이루고 있는 선은 일자였다가 올라갔다 내려감을 반복하며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실비아의 순탄치 못했던 삶을 드러내는 듯 보인다. 

테드가 떠나감과 동시에 자신의 행복을 잃고 분노에 치민 실비아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타이핑을 치며 시를 써 내려간다. 시는 굉장히 직접적이며 날 것이고 섬뜩하다. 이때 타악기가 강조되며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얽혀진 선 조명이 위암감과 분노를 표현하며 그녀의 감정이 극도로 치솟는다. 그녀는 <벨자>라는 소설을 쓴다. 주인공인 소녀 벨자는 유리로 된 종 속에 평생 갇혀 세상을 바라본다. 세상은 갈 수 있을 듯, 손에 잡힐 듯 보이지만, 벨자에게는 허황된 꿈일 뿐이다. 벨자는 곧 실비아이다. 

실비아는 항상 다리를 활짝 벌리고 앉는다. 그녀는 당대 사회가 요구한 집안일, 남편 내조 등 모든 역할을 수행한다. 실비아는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펼치지 못한다. 그녀의 시는 남성으로 가득 찬 문학계에서 거칠고 직접적이어서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그녀는 항상 천재 ‘시인’을 꿈꿨지만, 이것은 오직 남성에게만 해당된 것이었다. 사회 관습적으로 치마를 입은 여자는 다리를 모으고 앉고, 바지를 입은 남성은 다리를 활짝 벌리고 앉았다. 이런 점에서 실비아는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표면적으로 남성적 권력이라 일컬어지던 것들을 갖고자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사회의 부당함 속에서 번번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점들이 실비아가 10년마다 한 번씩 자살했어야만, 그가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었음을 암시함으로써 그녀의 삶에 깊이 공감하게 한다. 자살은 그녀에게 살아남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의식이었다.

실비아에게는 세상이 너무 추웠다. 세상은 그녀에게 따뜻한 곳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목도리를 떴고, 그녀에게 목도리는 원고, 즉 그녀가 쓴 글이었다. 에필로그에서는 기차를 탄 그녀가 누구에게 주기 위한 목도리를 짜는 것이 보여진다. 페미니스트의 시초라고 불리는 이 여성이 후세에 전하는 위로이다. 그리고 이 위로는 단지 여성이 아닌,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말이다.  



                                           *원문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3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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