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당에서 만난 책의 시간을 아는 아이
제가 살고 있는 곳의 한 책방이 중앙 매대를 어린이 도서로 배치했다고 합니다. 서점에서 어린이 도서는 대체로 왜 입구가 아닌 구석 쪽에 있어야 했는지 서운했던 저로서는 아주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어린이 날을 맞이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쁜 일입니다.
어린이는 책에서 많은 영감과 배움을 얻을 나이이기도 하지만 상처를 받기도 아주 쉬운 나이입니다. '주식 투자', '트랜드', '재산', '부동산'과 같은 어마무시한 단어들이 반겨주는(?) 서점 입구에서 아이들은 얼마나 위축되었을까요. 그리고 기억 속을 더듬어 찾아가거나 '어린이 코너'의 팻말을 따라 그곳에 겨우 도착해 보면 비닐에 단단히 갇혀 있는 책들을 마주했을 겁니다.
이번 겨울에 갔던 속초의 문우당이라는 한 서점이 떠오릅니다. 저는 그곳에서 많은 것들을 담고 품고 왔습니다. 문우당의 입구는 어마무시한 단어들의 책이 아닌 그림책들로 가득합니다. 오른쪽을 봐도 그림책, 왼쪽을 봐도 그림책입니다. 어린이가 아니더라도 책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간다면 환영받는 기분이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더 많이 과장해 보자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책을 고르고 있는데 한 아이가 제 앞을 지나가려다가 '아!' 하고는 저의 뒤쪽으로 지나갔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향해 눈으로 '고마워. 넌 참 착한 아이구나.' 하고 웃어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수줍어 하며 재빠르게 다른 곳으로 갔지만 그 아이의 입과 눈가에 남아 있던 미소는 계절이 바뀐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어른들도 이렇게까지 누군가의 시간을 존중해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시회만 가더라도 그림의 시간 앞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을 수없이 봤습니다. 책의 시간은 말할 것도 없지요. 잘못되었다기보다는 그 아이처럼 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착하고 섬세한 한 아이 덕분에 모든 책들이 더 사랑스럽고 소중해졌습니다. 그 아이는 '책의 시간'을 아는 아이이겠지요? 그 아이의 보호자께서 '얘야, 누군가가 책을 고르고 있을 때 그 앞을 지나가기보다 그 뒤로 지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가 뒤로 지나간다면 아마 그 사람은 굉장한 책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하더라도, 그 아이는 '책의 시간'을 알고 있는 아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자신도 존중받아봤다거나.
어디에서 존중을 받아보았을까요. 문우당의 그림책이 가득한 입구에서부터 존중을 받은 것은 아닐지 떠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