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브라질리에 전
그런 날이 있다.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하고 싶은 날.
그 날이 바로 어제였다.
몇 주 전에 한 전시회에 갔었는데 도슨트 시간을 놓쳐서 혼자 감상하고 돌아온 날이 있다. 모든 전시가 도슨트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 전시는 왠지 도슨트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마음의 이끌림이 찾아왔다. 그래서 무작정 버스 터미널로 갔고 그곳에서 오래 앉아 있다가 미술관으로 향했다.
"앙드레 브라질리에; 멈추어라, 순간이여."
도슨트가 누구인지 확인을 못 하고 갔는데 마침 내가 좋아하는 분이 하시는 날이었다. 미술관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아주 많이 붐볐다. 그리고 그 분 얼굴을 보는데 눈물이 조금 맺혔다. 그 분을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라 '오늘 나에게 작은 행복들이 계속 와주는구나' 했기 때문이다.
브라질리에는 순수했던 사람 같다. 전쟁도 겪고 아들을 잃었는데도 평생 그림에 행복을 담아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그림을 통해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간직하길 원했다고 한다.
삶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예술' 아닌가요?
전시 해설을 듣는 내내 남 몰래 눈물을 흘렸다. '맞아, 나는 아름다움을 만들기도 하고 발견하기도 하는 예술가였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주제로 했던 수업인 작년의 '문장론' 수업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림들에는 행복이 가득 묻어 있었다. 작가는 자연물이나 어떤 대상을 색칠할 때 자신의 감정에 따른 색을 칠했다고 한다. 그래서 색깔들이 주는 위로가 있는 것 같았다.
어제는 어떤 한 그림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이 작가의 마음에 머물러 있었다. 다가오는 모든 것이 나의 것인 것, 봄날에 미술관을 가는 내가 아름다움이고 행복인 것 같았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해준 말이 있다. 내가 그림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브라질리에의 그림에는 꽃을 만지거나 들고 있는 그의 부인 그림도 있었다. 그 그림들은 예전에 갔을 때도 기억에 많이 남는 그림이었는데 또 다시 꽃을 보자마자 눈물이 내렸다. 꽃을 어떻게 그렸는지 덩그러니 서서 보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 장미 그림을 보았다. 아주 예쁘고 아름다웠다. 그 그림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다. 꽃을 보는 나, 꽃을 가꾸는 나, 내 마음을 가꾸는 나.
맨 마지막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자연과 삶에 대한 새로운 사랑을 가지고 떠나시기를. 제 작품이 여러분께 날개가 되어 주기를.
결국 이미 다 나에게 있었구나 했다. 나는 이미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고, 그런 마음이 이미 나에게 있었던 것이다. 내가 전시회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던 이유도 아마 오랫동안 숨어 있던 나의 마음들이 나 자신에게 사랑 받고 있어서, 위로 받고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삶에 대한 새로운 사랑을 품고, 날개를 달고 날아갈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과 꽃을 만지는 일은 마음을 가꾸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