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알게 된 첫 날
2016년 3월, 고2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봄을 맞아 우리는 봄의 시를 찾고, 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벚꽃의 운동장에서 함께 시를 읽었습니다. 각자의 시를 읽으며 떠오르는 마음을 사진으로도 표현해 보고 그림으로도 표현 해 보고 노래로 표현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때 아이들에게 ‘함축'이라는 단어를 소개해 주며, ‘함'에 쓰인 한자의 뜻 중 '머금다'라는 뜻이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시인들은 단어와 문장 속에 무엇을 머금고 있을까? 그리고 너희들의 마음에는 무엇을 머금고 있니? 라고 물었습니다. 한 아이는 사랑을 머금고 있다고 했고, 한 아이는 꿈을 머금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자 장난기 많은 한 아이는 “선생님, 호진이는 입에 간식을 머금고 있어요.”라고 말해 학교 운동장은 벚꽃과 웃음으로 가득찼습니다.
“거기 지금 누구야! 뭐 하는 거야 지금!" 누가 저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쳤습니다. 당시 학교의 교감 선생님이 학교 본관 현관에서부터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반말로 또 다시 말했습니다. “지금 뭐하는 거지?” 어떤 수업을 하는 중이었는지 설명했지만, 이미 제가 야외에서 수업을 하는 것에 화가 많이 나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달리 그는 제 이야기를 머금을 수 없었습니다. 학교는 동네 놀이터가 아니라 직장이다, 모의고사 1등급 받는 아이들에게 무슨 짓이냐, 이 수많은 아파트에서 학부모들이 우리 학교를 주목하고 있는데 야외수업을 하는 것이 알려지면 우리 학교의 위상이 떨어진다, 민원을 당신이 감당할 거냐와 같은 이야기를 몇 분 정도 들었습니다. 그가 아이들에게 당장 교실로 들어가서 자습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장실로 불려가서 교사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또 혼이 났습니다. 그가 저에게 한 언행은 저에 대한 모욕이라기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마음 속에 머금은 것을 해치는 일이었습니다.
혼 나는 시간이 끝나고 복도를 지나 운동장 한 구석으로 가려는데 아이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화를 내는 아이들도 있었고 우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수줍게 나와서 저에게 나무에서 떨어진 작은 벚꽃 가지를 귀에 꽂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아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아름다우세요.” 옆에 있던 또 다른 아이가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 아 름다워요.” 또 다른 아이가 이야기했습니다. 웅성웅성 아이들이 이야기했습니다. “맞아요, 선생님, 아름다워요. 오 늘을 잊지 못할 거예요.”
제가 아름답다기보다 그 날이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아름답다는 말을 처음으로 들어본 날이었습니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게 된 첫날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