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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선 Apr 26. 2022

까만봉다리를 들고 나오는 이의 모습

선물과 환대

사람들이 행사 같은 곳을 다녀오면 손에 꼭 무언가를 쥐고 들어오는 풍경을 본다.

교회에 가면 물티슈나 먹을 것, 말씀 구절이 적힌 액자를 들고 나오고,

모델하우스에 가면 티슈를 들고 나오고,

학원에 가면 파일철을 들고 나오고,

재작년의 경우, 코로나 검사를 받으면 마스크를 들고 나왔다.


오늘 아침 출근 길, 마스크를 꺼내려 드는데 문득

아주 어릴 적부터 서글펐던 아빠의 모습을 생각한다.

특히 재작년에 아빠가 밀접 접촉자가 되어 코로나 검사를 갑자기 받은 날이 떠올랐다.

그 당시만 해도 밀접 접촉자라는 것은 어마무시한 일이어서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간다는 것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긴장되는 일이었다.

아빠는 검사를 받으러 나갔었고, 그 날은 마침 둘째 고양이의 중성화 수술을 받는 날이어서 보건소 근처의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동물병원으로 가던 중 아빠가 까만 비밀봉다리를 들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모습을 차 안의 창문으로 보았다.

그 까만 비밀봉다리 안에는 얼핏 보기에 마스크 두어 개가 담겨 있었다. 보건소에서 집까지 3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아빠의 허탈하고도 불안해하는 눈빛, 아무 의미 없이 봉다리에 담겨 있는 듯한 마스크가 불쌍해 보였다. 정확히는 그걸 들고 있는 아빠가 불쌍해 보였다.


아빠는 그곳에 가서 환대를 받았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괜찮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까.

밀접접촉자여도 확진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까.

마스크를 검은봉다리 안에 넣어줄 때 친절하게 넣어줬을까.

아빠는 친절함과 따뜻함을 봉다리 안에 가득 넣어 집으로 걸어가는 것일까.


선물과 환대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일하는 학교의 아이들은 어떤 것을 주어도 기쁘고 감사하게 받을 줄 아는 아이들이다.

물건 자체가 좋을 때도 있겠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이 우리를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셨어'라는 데 정확한 마음을 느낀 것 같다.


3월 초, 학년 자치 시간에 고3 아이들이 모두 모였다.

이 아이들이 개학하자마자 학교에 오고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리 아빠와 같은 마음으로 돌아가질 않길 원했다.

검은 봉다리에 차가운 마스크 두어 장이 담긴 채로 터덜터덜 집에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환대하는 마음으로

아이들 이름이 담긴 시 구절과 펜을 준비하고,

선생님들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포장하고,

당일 날 아이들에게 하나씩 선물해 주었다.



아이들은 이 펜을 품에 끌어안았다.

두 손 가득 감사하다며 받았다.

몇 아이들은 그 포장을 아예 뜯지도 않고 있다.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서란다.


같은 봉다리에(물론 아이들에게 검은 봉다리를 주지는 않았다.) 무엇을 담아야 할까.

작은 휴지를 주더라도 그 안에 환대와 사랑의 마음을 담아주고 싶다.

그래야 돌아갈 때 초라한 것이 우리 아빠인지 검은 봉다리인지 헷갈리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주었던 시 구절은


ㅇㅇ에게_     

내가 너의 목소리에

목소리를 덧댈게

너를 절대

혼잣말로 두지는 않을게.     


박상수,

‘들어줄게 너의 이야기를’ 중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초라한 비닐 봉지를 들고 혼잣말을 하며 돌아가는 이들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그들에게 나의 목소리를 덧대어 주고 싶다.

우리의 목소리가 비닐 봉지의 바스락거리는 초라하고도 날카로운 소리를 포근하게 덮어주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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