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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helger Sep 30. 2016

몹시 시각적이고 탐미적인 여행

베를린 7 -  위트 장전,  베를린 국립 미술관

0.

여행하면서,


눈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었다. 우린 눈으로만이 아니라 그동안 도토리처럼 쟁여 놓았던 경험과 언젠가의 기억, 그리고 세월이 흐르며 나름 선별된 각자의 관심을 통해 낯선 것을 본다. 그래서 여행 패턴으로 타인을 알아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낯선 타인의 낯설지만은 않은 글이 얼마나 나와 닮은꼴인지... 그래서 오늘도 나는 수많은 지구촌 세계 여행기를 읽으며 나와 코드가 통하는 글을 찾아내고 마치 그 사람을 사귀는 것처럼 가슴 설레며 다음 글을 기다리는 그런 혼자만의 썸을 탄다. 그런 누군가의 썸을 위해 오늘은 1일 도슨트!


나의 독일 문화 여행기가 몹시도 시각적이고 탐미적으로 바뀌는 순간이 바로 대도시 박물관에서다. 시각적이지만 사실 청각적인 문화를 이어온 독일 답게 오디오를 동반한 청각적인 여행이라는 것이 맞다. 남유럽이 각종 향신료와 비릿한 바다 냄새와 왁자지껄한 주방 소리로 미각과 후각의 여행을 제공한다면, 북유럽 여행은 이렇게 시각적이고 탐미적인, 정적인 가운데 아주 바쁜 여행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문화사와 역사, 건축사 등이 시간적 흐름에 따른 글쓰기에 적합하기도 하지만 기름기 쫙 뺀 수육처럼 담백하고 쫀득한 글쓰기에도 제격이어서 내 패턴과도 잘 맞는 것 같다.. 오늘은 1유로 50짜리 길거리 국민 간식 하나 사 먹고 '베를린 국립 미술관 Gemaeldegallerie'으로 간다.


"같이 미술관 가실래요? 멋진 작품, 재미나게 소개해드릴게요!"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사람은 바로 '카라바조 Caravaggio',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대가이자 무엇보다 빛의 화가!! 카라바조를 이번에는 색다른 맥락에서 보게 되었다. 먼저 왼쪽은 어느 정도 잘 알려진 카라바조의 '승리의 아모르', 이 아모르의 모델은 체코(cecco)라는 소년인데 아마 카라바조의 동성애 상대였을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아이! 헝클어진 머리와 살짝 벌린 관능적인 입술, 절대 순진하지 않은 표정을 띄고 있다. 고작 10살 남짓한 아이가! 하지만 사실 이 아이가 짓고 있는 미소야말로 카라바조의 페도필리아(pedophilia, 소아성애) 성향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반항아 카라바조는 신의 세계에 속해 있어야 할 큐피드(에로스)를 세속적인 아이로 묘사해 놓으며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인데, 반항아라니... 일단 호감 가는 인물! 카라바조가 이 세속적이고 관능적인 에로스로 세상을 도발하고 있다면,  오른쪽 그림에서는 도덕을 비웃는 듯한 아모르의 도발을 미하엘 천사가 응징하고 있다. 카라바조의 그림에 대한 당대 정통화 계열의 응답인 셈이다. 이렇게 대놓고 비교해 보라고 옆에 나란히 진열해 놓은 것을 보니 새삼 피식... 웃음이 나며 괜히 반항아 쪽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시대를 초월해 반항아, 이단아, 아웃사이더만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 멋진 전시!

                                                  


'프란스 할스 Frans Hals'

검은색 옷, 흰색 레이스, 이들은 시민이다. 17세기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부수고 세계의 경제력을 차지한 네덜란드! 경제력과 시민적인 자부심을 갖춘 17세기 네덜란드 시민들은 이제 귀족의 영역이었던 초상화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이 45도 각도! 그리고 무엇보다 '개성'을 드러내는 얼굴, 계급적 자의식을 표출하는 이들의 뒤에는'프란스 할스 Frans Hals'와 같은 화가들이 있었다.           

                                       


 memento mori


'오시아스 베르트 Osias Beert'의 정물화, '중국 도자기 접시에 담긴 딸기와 체리 정물화   Stilleben mit Kirschen und Erdbeeren in chinesischen Porzellanschuessel'  1608.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을 이 작품, 낯선 이름, 평범한 정물화,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 작품에는 잠자리와 나비가 등장하고, 숙성도가 서로 다른 과일들이 뒤섞여 있다. 17세기 바로크 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나비는 생명을, 잠자리는 죽음을, 덜 익은 과일과 완숙 상태의 과일, 이미 시들어가는 형상은 인생을 상징한다. 이 맥락을 읽어낸다면? 바로 memento mori!, 이 작품 또한 단순한 정물화가 아닌 바로크 회화의 특징인 알레고리의 형상화인 셈이다. 알아야 보이고, 알고 나니 바로크 회화가 재미있어진다.

                                             

17세기를 사랑하게 되었다.
바로크 멋짐


'피터 브뤼헐 시니어 Pieter Bruegel der Ältere', '네덜란드의 속담들  Die niederlaendischen Sprichwoerter' 1559,

개인적인 선호도로 보자면 단연 최고인 이 화가!

이 작품은 미술관 전시실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상당히 커다란 작품이다. 작품 앞에는 도록도 비치되어 있고, 이 인물 형상들이 어떤 속담을 형상화하고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고 있다. 그러니까 여기 그려진 모든 인물들과 그들의 행위는 속담이다. 속담을 그림으로 표현해 놓다니 기발하지 않은가! 우리도 속담 많은데.....


                                                 


그림 한가운데에 붉은 로브를 입은 여인과 푸른 망토를 걸친 사나이가 보인다. 사실 네덜란드에서 '남편에게 푸른 망토를 씌운다'라는 속담은 '바람피운다'는 뜻이란다. 그리고 왼쪽 밑에 한 사나이가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은 가차 없이 화가 나서 불가능한 일을 하려 한다... 는 뜻의 속담이고.  뜻을 안다면 더욱 재밌는, 뜻을 몰라도 몹시도 사실적인 저 그림 하나하나를 보고 있자면 슬며시 피식 웃지 않을 수 없다. 위트가 넘치는 브뤼헐, 그의 작품은 간혹 한국 건설현장의 가림벽에 실사 프린트로 걸리곤 하는데 이유가 아마 이 유머감각에 있을 것이다. 정말 오랜 시간 비치된 해설을 대조해가며 그림을 보았다. 

                                           


'페터 크리스투스 Peter Christus' - '젊은 여인의 그림  Bildnis einer jungen Dame', um 1470,

15세기경에 그려진 궁정 여인의 초상일 것이다. 여인이 상당히 어리지만 묘하게 사람의 시선을 끄는 도도한 모습이다. 아주 아주 자세히, 돋보기라도 들고 봐야 할 저 목걸이 부분, 저 여인은 목걸이 위로 거의 잠자리 날개 같은 레이스 베일을 두르고 있다. V라인 베일이다. 이런 디테일! 내가 좋아하는 거~

                                               


'루카스 크라나흐 Lucas Cranach der Ältere'의 '젊음의 샘  Der Jungbrunnen'

이 회화도 개인적인 선호도로 보자면 최상위, 이유는? 거의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작품 내용을 전달하는 그 직접성이랄까...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는 곳, 쾌락과 술과 향연이 가능하게 해주는 여인으로의 회귀, 바로 '루카스 크라나흐 Lucas Cranach der Ältere'의 '젊음의 샘  Der Jungbrunnen'이다, 1546년도 작품.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 그림은 아주 세속적이고 지극히 단순하며, 정말 유치해서 어떻게 다르게 해석할 수 도 없을 정도인데 웃음을 자아낸다. 크라나흐를 처음 접한 곳이 괴테의 도시 바이마르였고, 그때 크라나흐는 그저 변방의 이름 없는 화가였겠거니...했는데 이곳 베를린에서도 만나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갑기까지 하다.. 이런 것이 미술관 여행의 맛일 것이다.

                                                   


'얀 요한네스 페르메이르 Jan Vermeer van Delft',  ' 저 와인 잔 Das Glas Wein', um 1661/62

17세기하면 이 유명한 화가를 빼놓아선 섭섭하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그 작품으로 유명한 일명 '페르메이르', ' 저 와인 잔 Das Glas Wein', um 1661/62, 이 작품에는 묘한 긴장감이 맴돈다. 그의 '포도주 잔을 든 여인'이라는 작품에서는 이미 여인이 포도주를 마신 뒤 우리를 향해 웃음 짓고 있는 형상인데 반해, 이 작품은 바로 그 직전의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그 직전 상황을 그린 그림도 있을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진귀한 그림을 보게 되었다.

남자의 손은 여인을 전혀 접촉하고 있지 않으며, 채 와인잔을 비우지도 않은 여인에게 다음 잔을 따라주기 위해 이미 손잡이를 잡고 있다. 성급한 마음이 포도주병을 잡고 있는 남자의 손을 통해 전달된다. 반면 여인은 한쪽 손으로 다른 쪽 팔꿈치를 받치고 있으며 이미 포도주를 마시고 있지만 아주 천천히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머릿수건은 아직 깊게 얼굴에 드러워져 있고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은 듯하다. 반쯤은 비워진 '와인 잔', 이 오브제가 상징하는 것!! 페르메이르는 남자의 유혹과 여인의 긴장을 이렇게 마치 사진의 한 장면처럼 포착해 내고 있다.  대가!



박물관 티켓 3일권으로 다녀도 오디오 투어를 하는 경우에는 하루에 두 곳도 소화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오디오도 없이 박물관 관람을 하는 것은 전혀 추전 할만한 것은 아니다. 수박은 쪼개어 속 맛을 봐야 하는 법! 오늘 국립 미술관에서 17세기 유럽 회화를 제대로 관람했다. 이 마법의 티켓 3일권으로 돌아본 여러 박물관은 어느 곳 하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소소하고 여유로왔던 베를린 일상, 언어를 아는 이상 완전한 관광객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관광객인 것처럼 돌아본 베를린이 정겹고 좋다.~ 한 달을 살았더도 찾지 않았던 박물관인데 역시.... 여행과 일상은 다른 것인 게야~


글, 사진 모두 Arhel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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