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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Sep 25. 2017

밤하늘, 쉼표


앞으로 걸어갈 때마다 아래로 수그러드는 달을 보며 아쉬워하던 밤이었다.

이 날의 달은 초승달이었는데, 마치 시꺼먼 먹지 위로 쉼표 하나가 그려지듯 

암울한 마음을 잠시 쉬이 하라는 위로를 보내 주었다.


사직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도화원기]를 떠올린다.

동굴의 전후로 이상향도 복숭아꽃도 없고, 어느 쪽이 낙원 인지도 모르겠다. 

근사한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면 사직동 쪽으로 나가는 길이 비경의 방향이라 느낀다. 그곳에서는 따스한 불빛과 커튼 안으로 원목식탁에 올려진 바질 페스토 파스타와 신선하여 아삭한 샐러드를 맛볼 수 있다. 

도서관에 책을 빌리거나 돌려주러 가는 길이라면 그때는 종로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복숭아꽃이 있는 것만 같다. 서가의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설레어 이것저것 담다 보면 어느새 부담스러운 한 짐이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자, 한잔을 기울이러 터널을 통과하다 보면 

가는 길은 쓸쓸하나 오는 길은 조금 용감해지는 동굴 같다 생각한다. 

힘겨운 발걸음으로 동굴을 벗어났으나, 돌아올 때는 배를 타고 유유자적 대접의 배웅을 맞게 되는 기분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한다.

어쨌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낙원이다 라고.

별천지를 꿈꾸며 돌아다녔는데 

복숭아꽃도 따뜻한 밥과 엄마가 담가 준 김치도 이 곳에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터널을 향하여 걸어가는 도중에 바로 저 쉼표를 만났다.

뒤돌아 보고 옆을 봐도 보이지 않던 달이

터널 위, 저 건너편, 내 앞에 있어서 

조금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더니 산 아래로 자꾸만 모습을 감추려 하였다.

사진을 찍어 볼까 했으나 

눈으로 보는 것만 아름답지 않았고 

사진으로 나는 순간을 가쁘게만 잡았을 뿐, 쉬이 가라는 메시지를 읽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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