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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Oct 31. 2017

믿는 일의 시작

성당에 교리 공부를 하러 처음 나간 날이었습니다. 인자하면서도 강단 있어 보이는 수녀님께서 각자 소개를 하라고 합니다. 앞으로 짧지 않은 시간 함께 공부하게 되는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하였습니다. 

종교가 없었던 저는 이런 모든 상황이 낯설기만 했습니다. 신앙을 갖는 것, 나의 불안정한 삶이 조금은 바뀔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 죄에 대한 고백과 반성, 나를 제대로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수용하는 삶. 과연 이런 일들이 나에게도 가능할까 의문을 품고 의심을 가진 상태에서 앉아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멋스러운 젊은 친구들부터 지팡이에 의지해 천천히 걸음을 떼시는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수녀님이 본인 소개를 하고 봉사자들이 각자 소개를 하였습니다. 세례를 받고 믿음을 가진 경험에 대해 울컥하며 얘기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 울컥함에 참고 있던 눈물이 눈에 가득 고였습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 증상이 제게 있었습니다. 밥을 앞에 두고도, 지하철을 타고 가만히 서 있는데도, 버스 좌석에 털썩 앉는 순간에도, 마트에 가서 스파게티 소스를 고르는데도, 커피 향을 맡고 있는데도 눈물이 계속해서 울컥울컥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가방에는 손수건이나 휴지가 꼭 있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도 제게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고인 눈물의 액체 입자들이 흩어지지 않게끔 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눈물은 계속 고여있다가 눈 속으로 다시 흡수됩니다. 

그런데 늘 이런 재주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패하는 날이 하루, 그다음 날 연달아 있게 되면 저는 이불속으로 숨어듭니다. 기진맥진할 때까지 그간 흡수되었던 눈의 물들을 쏟아냅니다. 그래서 휴지는 가방뿐만 아니라 침대 머리맡에도 구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자 친구가 이 곳에서 세례를 받고 미사를 보고 있어 멀리 분당에서 왔다는 또래의 남자 분부터 소개를 시작했습니다. 발음이 정확한 초등학교 선생님도 소개를 마쳤습니다. 이름, 사는 곳, 직업 이런 것만 말하는 자리는 아니었던 게 먼저 운을 떼었던 수녀님께서 이름도 별명도 살았던 곳도 어떻게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지도 취미도 특기도 앞으로의 계획도 좋아하는 생각들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님이 팔 하나를 부축이며 지팡이를 짚고 들어오셨던 백발의 할아버님이 소개를 시작했습니다. 배구선수셨고 부인의 위령미사를 이 곳에서 지낸다고 하셨습니다. 그 목소리가 힘이 있는데 다정하여 듣는 내내 감동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이가 이 곳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나의 소개인데 그냥 그 말부터 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이런 특별한 계기로 이 성스러운 곳에 오게 되었고, 신앙만큼 이유 없이도 맹목적으로 소중한 것이 아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하면서 느꼈습니다. 제가 제게 작은 믿음을 주었습니다.

미사를 보면서, 반짝이는 충만함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종교가 무엇이든 일주일에 한 번 이런 의식을 통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얽혀있고 굽어 있던 것들을 생각합니다. 평정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던 마음의 굴곡이 있다면 그 시간 이후 조금씩 끌어올리고, 끌어내려 안정권 안으로 자신을 위치시킵니다.

뻥 뚫려있던 마음을 채우고 나와 은행나무 잎들을 밟기도 피하기도 하며 길을 걸었습니다. 참으로 비관적이었던 제가 그 날 만큼은 조금 더 웃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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